“친정어머니처럼 시어머니 모셨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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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어머니처럼 시어머니 모셨을 뿐…”

효부 칭송 자자한 이 순 애씨

40년 동안 3남매 장성시키며 홀로 된 시어머니 극진히 봉양
“마땅히 해야 할 일 했을 뿐…남편 덕에 행복한 생활” 감사말본새부터 야무지게 느껴졌다. 가계에서 안집으로 이어지는 공간, 시어머니 강정님(91) 할머니가 가끔씩 실례(?)를 하기도 하는 집안 구석구석에서는 그녀 특유의 부지런함이 느껴진다.
그를 소개한 영암읍 동무리 1구 전학균 이장은 “연로하신 시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 일이나, 손자들을 도맡아 키우는 일, 이른 새벽부터 가게 앞을 티끌하나 없이 치우는 모습을 보면 같은 동네에 함께 살고 있다는 게 즐겁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막상 그녀와 얘기를 시작해보니 역시 인생살이는 ‘파란만장’이다. 어떤 이의 삶이 그렇지 않겠는가만 유독 곡절도 많고 시련도 참 많다.
“스물다섯에 시집가는데 참 기가 막히데요. 나이 30에 홀로되신 친정어머니를 두고 떠나려니 발걸음이 떼어지질 않습디다. 할 수만 있다면 내 어머니 곁에서 평생을 모시고 살고 싶었지만 어디 뜻대로 되나요. 시어머니 잘 모시면 친정어머니도 잘 계시겠지 하면서 모질게 마음먹고 살았어요. 우리 남편(박종호· 69) 덕에 지금에 이른 것 같아요. 시어머니에 대해서는 친정어머니 모시듯 했을 뿐 특별히 잘한 일이 없어요.”
영암읍 동무리 이순애(67)씨. ‘효부(孝婦)’라는 칭찬의 말에 손사래를 친다. 그냥 내 어머니처럼 모셨을 뿐이란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양친부모가 있는 남자에게 꼭 시집가야지 맘먹었는데 자신과 똑같은 처지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남편에게 시집왔으니 그게 운명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 어머니 모시듯 시어머니를 모셨다.
“사람이 90세가 넘으면 산목숨이 아니데요. 한 여름인데 겨울옷을 꺼내 입고 계시고 한겨울인데 여름옷을 꺼내 입고 계시는 모습이 잦고, 음식을 너무 많이 드셔 가끔 이 방 저 방 실례를 하시기도 하지만 내 어머닌데 어쩌겠어요. 그저 잘 먹고 잘 주무시다 편안하게 가시면 좋겠다는 생각만하며 모시고 있을 뿐이에요.”
시어머니 강정님 할머니 역시 친정어머니처럼 나이 30에 홀몸이 됐다. 시아버지는 공산주의의 서슬이 시퍼렇던 때 희생돼 그 때부터 남편을 비롯한 3남매를 홀로 키웠다. 남편은 장남, 그래서 시어머니 모시는 일에 더 책임감이 느껴졌다. 처음엔 사탕장사를 했고, 지금은 20년째 영암읍에서 ‘제일장식’을 남편과 함께 운영하며 3남매를 낳아 모두 출가시켰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만도 여섯이다. 모두 그녀가 도맡아 키우다시피 했다.
시집왔을 때부터니까 올해까지 무려 40여년 동안이나 정성으로 보살피고 있는 강 할머니는 듣는 데만 지장이 있을 뿐 건강하시다.
닭 한 마리를 요리하면 지금도 거뜬히 잡수신다. 워낙 연로하셔서 가끔 이상하다는 느낌만 들뿐 건강하다. 모두가 그녀가 보살핀 덕분이다.
“친정어머니가 한번은 교통사고로, 다른 한번은 넘어져서 두 다리가 불편해요. 몸이 좋지 않으면 아무래도 딸집이 편하잖아요. 그래서 모시기도 하는데 그 때마다 몸이 좋아져요. 시어머니를 보면 꼭 친정어머니가 생각나요. 어느 한분 잘 모시면 다른 분도 건강하시겠지. 날마다 그런 생각만 하고 살아요.”
장성한 자식들은 이런 그녀를 걱정해 강 할머니를 시설에 맡기라고 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때마다 단호하게 잘라 말한다. 40년을 그렇게 살아왔듯이 돌아가실 때까지도 함께 모시겠노라고. 끝내 효부라는 칭찬을 부끄러워했지만 전학균 이장의 말처럼 그녀는 이 시대의 진정한 효녀(孝女)임에는 틀림없었다.
편집국장 기자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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