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봉고분 6세기 초 축조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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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봉고분 6세기 초 축조 가능성

원통형 토제품 50여점 출토 고분규모 48m 육박

영산강유역, 일본과의 고대사연구 귀중한 자료영암군 시종면 태간리에서 발굴된 자라봉고분은 6세기 초에 축조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밝혀졌다. 또 제사토기인 원통형토기가 다량으로 출토되어 백제와 영산강유역 그리고 일본과의 고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대한문화유산연구센터(원장 이영철)는 23일 영암군의 의뢰로 20년만에 다시 발굴조사에 나선 자라봉고분 현장에서 열린 학술자문회의 및 현장설명회를 통해 무덤에 대한 구조와 만든 시기를 더욱 확실히 파악할 근거를 확보했다고 밝혔다.자라봉고분은 호남지방에 분포하는 전형적인 왜식(倭式) 고분양식인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 중에서도 만든 시기가 가장 빠르다고 보고된 고분이다.이영철 원장은 “석실(石室) 안에서 나온 개배(뚜껑)라든가 주구(周溝 무덤 주위를 빙 두른 배수로)에서 출토된 병과 완(사발) 등으로 볼 때 무덤을 만든 시기는 6세기 초기나 전반 무렵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이같은 주장은 1991년 자라봉고분을 처음 발굴한 당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재의 한국학중앙연구원) 강인구 교수의 4세기 무렵이라는 주장보다 200년 정도 늦은 것이다.대한문화유산연구센터 조사결과 자라봉고분은 시신을 안치하는 봉분은 둥글게 만들고, 그 전면에는 방형 기단, 혹은 제단을 조성한 전방후원분 양식이라는 점이 확실히 밝혀졌다. 이를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평면 형태가 마치 목을 내민 자라를 닮아 자라봉고분이라 일컫고 있다.또 원형봉분과 방형기단 주변으로는 배수로와 무덤경계를 표시하는 도랑 비슷한 시설인 주구를 돌린 것으로 밝혀졌다. 주구는 폭이 넓은 곳은 6m에 달하며 최대 깊이는 1.8m다.봉분과 주구에서는 붉은빛이 도는 원통형 토제품 50여점이 출토됐다. 일본에서는 하니와(殖輪)라 부르는 이들 토제품은 같은 전방후원형 고분들인 광주 명화동과 월계동 1·2호분 출토품과 비교된다. 또 분구(墳丘 봉분)는 광주 명화동, 월계동 1·2호 전방후원분과 신촌리 9호분, 고흥 안동고분, 무안 덕암고분 등지에서 확인되는 ‘복발형’에 가까운 공법으로 축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분구 축조방법은 서일본 지역에서 주로 확인된다고 대한문화유산연구센터는 설명했다.이밖에 봉분 중앙에 자리 잡은 석실은 기존에는 수혈식(竪穴式 구덩이식)으로 보고됐으나 정확한 파악을 위해 추가조사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석실은 평면형태가 동서방향으로 장축을 마련한 장방형으로, 길이 3.26m에 너비 2.36m 안팎이며 높이는 1.85m다.
시종면 태간리 자라봉고분 발굴조사결과
고분 축조연대 기원후 6세기초 내지 전반으로 판단
(재)대한문화유산연구센터(원장 이영철)는 지난 23일 시종면 태간리 774번지 자라봉고분 발굴현장에서 자문위원회의를 열고 그동안의 조사경과와 방법, 조사내용 등에 대한 보고와 함게 조사성과를 중간보고했다.
자라봉고분 발굴조사는 1991년 정신문화연구원에 의해 1차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나 그대로 방치되어오다 영암군이 최근 대한문화유산연구센터에 자라봉고분 정비복원을 위한 조사를 의뢰함에 따라 20년만에 재개됐다. 백제와 영산강유역 그리고 일본과의 고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는 자라봉고분 발굴조사결과를 살펴본다. <편집자註>
분구는 복발형 공법 축조…서일본지역 고분과 유사
석실(곽)은 수혈식 추정 주구는 잠형 굴착방식인듯
■ 조사경과
자라봉고분은 1991년 정신문화연구원이 1차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조사는 매장주체시설을 확인하는 석실(곽)의 내부조사에 중점이 두어졌다. 분구의 경우는 방부에 트렌치 조사를 실시해 성토상태를 확인했다.
그결과 매장주체시설은 원부 중앙에 동-서방향의 장축을 둔 수혈식석실이 드러났다. 석실은 5매의 개석으로 오르면서 점차 내경하는 구조를 띠며, 바닥에는 작은 판석재를 깔았다고 보고됐다.
석실 내부는 발굴조사가 이뤄지기 전 도굴된 것으로 확인됐으나, 금제귀걸이를 비롯한 구슬과 대도, 도자, 철모, 철촉, 철부, 철겸, 소호, 호, 대호, 개배 등이 남아있었다. 또 말뼈로 추정되는 1개체분의 뼈도 수습됐다.
특히 발굴조사 결과 유사흑도가 출토된다는 점을 근거로 고분의 조영 시기는 기원후 4세기로 보고됐다.
그 뒤 지난 2005년경 자라봉고분 일대는 농지정리과정에서 고분 주구의 흔적이 드러나 신고됐고, 분구 주변에 대한 보호가 이뤄져 전남도 기념물 제190호로 지정 관리되어왔다. 그러나 이후 분구의 유실이 심해져 영암군이 고분정비를 목적으로 한 학술조사를 추진하게 됐다.
■ 조사성과
첫째 고분의 축조연대는 현재까지 출토된 유물을 근거할 때 기원후 6세기초 내지는 전반으로 판단됐다.
이는 석실(곽) 내에서 출토된 개배와 주구에서 출토된 병과 완, 개배 등에 근거한다. 가장 많은 출토율을 보이는 원통형토제품은 통형으로 2조돌대를 두르고 있으며, 외면에는 조족문의 횡주다선집선문이 타날된 형식이 대부분이었다. 돌대 사이에는 반원상에 가까운 삼각 투창이 확인됐다. 광주 명화동과 월계동 1·2호분 출토품과 비교된다고 보았다.
둘째 분구는 광주 명화동, 월계동 1·2호 전방후원분과 신촌리9호분, 고흥 안동고분, 무안 덕암고분 등지에서 확인되는 소위 복발형에 가까운 공법으로 축조했음을 확인했다. 이같은 분구성토방법은 일본의 경우 서일본지역에서 주로 확인되고 있다고 한다.
셋째 석실(곽)은 수혈식으로 보고된 바 있으나, 바닥석을 별도로 갖추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과 묘광과 벽석 사이에 적석을 채움해나간 방식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해남 용두리 전방후원분과 고흥 안동고분, 나주 복암리 96석실 등에서 양상과 유사하다고 한다. 또 분구를 거의 완성한 단계에서 묘광을 다시 굴착해 석실(곽)을 축조한 소위 분구식 고분임도 확인했다.
이는 이웃한 영암 장동 방대형고분도 같다. 다만, 수혈식구조를 단정하기에는 마무리 확인조사를 실시한 후 결론을 내려야 할 것으로 판단됐다.
넷째 주구는 나주 신촌리 9호분에서 밝혀진 소위 잠형에 가까운 굴착방식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평면형태는 방패형이 아닌 분구형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같은 분형은 해남 용두리와 함평 신덕1호분 전방후원분에서 확인된 바 있다. 주구에서는 50개체 이상의 원통형토제품이 출토됐다.

편집국장 기자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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