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갑사 소풍길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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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도갑사 소풍길 (하)

전 석 홍
전 전남도지사
전 보훈처장관
도선국사의 발자취와 관련된 구비전설은 어린 우리들의 마음을 환상속으로 끌어 당겼다. 그리하여 도선국사는 소년시절부터 내 머리속 깊이 각인되였다. 아기자기한 숲길, 섬섬옥수 같은 개울물 그리고 그 물 소리, 여러 형태의 바윗돌, 나는 정비석의 금강산 기행문인 ‘산정무한’을 읽을 때면, 그때 내가 본 도갑사 풍경길을 그림처럼 떠 올리곤 한다.
크고 작은 잡목 오솔길을 지나 해탈문에 이른다. 높다란 해탈문 안에 들어서면 양편에 눈을 부라리고 주먹을 불끈 진 사천왕이 어찌나 무서웠던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무서운 모습을 본 것은 처음 이라는 느낌이었다. 오랜 풍상의 팽나무 그늘 아래 크나큰 돌구유에서 물 한모금식 떠 마시고 대웅전에 들려서 초록 비단옷을 걸친 여석 구의 육광보살을 보고 아름다움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당나라에서 가져 왔다는 국보인 그 육광보살상등은 1972년 화재로 인해 소실되어 버려 회복할 길이 없으니 안타까운 마음 그지 없다.
대웅전을 오른쪽으로 두고 산길을 오르면 용수폭포가 나온다. 도선국사 수미왕사비의 발치를 지나서, 미륵전 둘머리 건널목을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바위 낭떠러지에서 폭포수를 연출한다. 지금은 바닥이 많이 메워지고 주변도 달라졌지만 그때만 해도 어린눈에 비친 폭포수가 장엄했다. 흰 물보라를 일으키며 쏟아내리는 폭포수가 맴도는 못은 수십 길 깊이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 못 안에 용이 살고 있다는 얘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오고 있어, 어찌나 무섭던지 가까이 내려다 볼수 없었다. 지금은 돌이 많이 쌓여 바닥이 환희 들여다 보이며 규묘도 옛날 같지 않아, 저것을 보고 그렇게 무서워했던가를 생각하면서 쓴 웃음을 짓곤 한다.
초등학교 다닐때 몇 차려 소풍길은 도갑사와 도선국사의 영상이 나의 머릿속에 깊이 집을 짓게 만들었다. 어렸을 적에 가장 발거름이 잦았던 나의 생활권역 경계 밖의 세계가 바로 도갑사였기 때문이리다.
지금도 나 홀로 ‘나의 옛길’을 걸으며 소년시절을 더듬어 보고 싶어 가끔 도갑사에 들른다. 이제는 차들이 들어 다니는 길이 트여 정감어린 옛 숲길은 찾을 수 없지만 멀리 둘러보기도 하고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사천왕을 보면서 옛날 나만한 어린이들이 이를 보면 무서워 할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또한 용수폭포에 들러 그 두려웠던 물바닥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소풍갈을 때 서서 내려다 보왔던 자리를 찾아보기도 한다. 세월의 흐름, 어렸을 적과 어른이 되었을 때의 생각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를 가늠해 보기도 한다.
옛날에 각인된 신비함과 아름다움은 지금도 내 마음의 세계에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으로 고스란히 남아, 나의 눈망울에 비추어준다. 내가 광주시장으로 있을때 도갑사에 들른 적이 있다. 그때 주지스님께서 두루마리로 된 도선국사와 수미왕사의 영정을 보여주었다. 귀한 영정이므로 잘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전남도지사 재직 시에 영암군에 도비를 내려 보내서 도갑사에 국사전을 건립하여 영정을 봉안할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도선국사의 행적을 하나의 책으로 엮어 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에 필요한 사업비를 영암군에 영달하면서, 내가 어렸을 적 소풍길에 보았던 도선국사의 발자국을 비롯해 도선국사와 관련된 전설이나 발자취도 조사하여 수록하도록 의견을 주었다 그렇게 해서 발간된 책이’先覺 道詵國師新硏究’(1988년 4월 영암군)이다.
그런데 도선국사의 발자국 등 전설이 수록되지 않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기회가 된다면 누락된 구비전설 등을 조사하여 보완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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