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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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힘

월우스님 도갑사 주지

인도 뉴델리에는 라즈가트(Raj ghat)라고 불리워지고 있는 간디 기념관이 있다. 인도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꼭 들리는 곳으로 일종의 성지라고 볼 수 있는 곳이며, 언제나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1948년 1월 30일 오후 5시 10분 경, 델리 하늘에 세 방의 총성이 울러 퍼진다. 간디는 오! 라마신이시여(‘Hai Ram’)이 한 마디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간디는 인도의 독립을 위해 자기 인생의 50년 가까이를 바쳤지만, 독립된 인도에서의 삶은 짧았다. 그는 인도 독립 이후, 또 하나의 큰 문제 즉 힌두교와 이슬람의 화합을 위해 노력했지만, 수포로 돌아가고 힌두교도는 인도로 이슬람교도들은 파키스탄으로 양분되어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같은 민족이지만 이념과 사상이 다른 남북한을 연상 시키는 것 같다. 결국 극우 힌두교 청년의 총에 쓰러졌다. 그리고 몇 분 후, 숨을 거두었다.
라스가트 이곳은 마하트마 간디의 화장터이다. 현재는 그를 추모하는 공원으로 잘 조성되어 있는데 입구에서 신발을 벗어 맡기고 들어가게 된다.
정사각형 모양의 돌로 벽이 둘러쳐 있고, 내부는 푸른 잔디밭이 깔려 있다. 정중앙에는 검은 대리석의 단상이 있고, 추모객들은 그 단상 앞에서 꽃을 바치고 기도를 하거나 가벼운 묵념으로 간디를 추모한다.
그리고 일반 관광객들은 단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간디가 살아 온 삶의 마지막 흔적을 더듬어 보며 각자의 방식으로 간디를 추모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단상의 정면에는 그가 마지막 ‘오!라마신이시여’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간디의 무저항 비폭력주의가 인도인에게 과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해 하면서 행여 인도인에게 무력감을 심어주지는 않았기를 바란다.
나는 가난한 탁발자이다. 내 속세의 소유물은 여섯 틀의 물레, 감옥에서 쓰던 접시들, 산양젖통, 여섯 벌의 옷과 타올, 그리고 내 알량한 명예이다.(간디 자서전)
초기 불교의 나라, 붓다의 생애와 자비가 있는 인도의 그곳에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1869~1948)의 라즈가트 간디기념공원(Raj ghat)에서 간디의 체온과 영혼은 순례자를 전율케 한다. 시절 인연의 도래로 나는 이곳에 찾아왔다.
간디의 일생이 보관중인 1층을 전시관의 그림에는 사용했던 방 그리고, 그가 처음 물레(찰카) 사용방법을 배운 곳 그가 쓰던 단조로운 식용기와 샌달, 물레 등에서 가난한 성자의 체취가 물신 풍겨난다.
내가 만일 염주를 세는 것과 물레 돌리는 것 가운데 택일해야 한다면, 내가 가난을 알고 이 나라에 굶주림이 있는 한 물레의 편에 손을 들어 그것을 나의 염주로 삼을 것이다.
이처럼 간디의 진리와 사랑은 불교의 평등과 자비의 사상이 묻어있다. 또한 자기 희생과 봉사는 대승 보살(大乘菩薩) 정신과 결코 다르지 않다. 남아프리카 공하국 요하네스버그에서 그가 소수민족과 인도 난민을 위해 변호사로 애쓴 흔적을 수많은 그림들이 화랑처럼 연결된 건물에 뻬곡히 전시되어 있다. 이곳을 감상하면서 문득 영화한편을 떠올랐다.
리챠드 어텐보로(Richard Attenborough)감독의 ‘간디’ 영화에 매료되어 수 차례 비디오를 보며 간디역의 벤 킹슬러(Ben Kingsley)도 좋아하게도 되었다. 영상은 고난에 찬 간디의 생애가 감동으로 다가 왔으며 자서전을 통해서는 그 영혼의 육성을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영국의 노제기마대는 사정업시 시위군중들을 짐승처럼 몰아붙쳤다. 이때 시위군중 한사람이 고함을 질렀다. “엎드려라 말은 사람을 결코 발지 않는다.간디도 이 말을 듣고 얼른 엎드렸다. 그 수난 질풍처럼 달려오던 말들은 앞발을 곤두세우며 급정지를 했다. 그 위에 따고 있던 영국경찰들은 굴러 떨어져 덩굴었다. 영화는 다큐멘트리가 아닌 드라마지만 오히려 그쪽의 감동이 더 큰것 같다.
간디는 150년의 영국지배로부터 인도를 해방시킨 인도의 아버지로, 타고르는 그에게 ‘위대한 영혼’이라는 ‘마하트마’의 존칭을 부여했다. 그는 평생 비폭력 독립투쟁 외에도 힌두, 회교도의 종교 갈등과 여성의 인권, 계급철폐에 따른 불가촉 천민에 대한 끊임없는 연정과 헌신을 삶을 살았다. 간디는 참으로 가난한, 걸사정신(乞士精神)을 지닌 탁발자였지만 인도의 운명과 인류를 향해 진리를 추구한 진정한 순교자였다.
생전의 모습이 전시된 그림에서 운수납자와 같은 수행자의 모습이 떠오르는게 아닌가.
그 중에서 지팡이를 들고 좁은 인도교를 건너는 장면은 마치 어느 고승의 걸음을 떠올린다. 깎은 머리에 허리를 구부리고 카다르(인도의 수직 무명옷)를 걸친 채 마른 종아리에 샌달을 신은 모습이다. 그 그림을 보면서 나는 조선후기 선불교증흥의 선구자 경허선사의 탈속한 ‘고승’의 그림이 연상되었다. 따라서 그림은 고뇌에 찬 모습에서 험한 길도 미소 띠며 가는 수행자의 표정으로 바꾸고, 막대기를 대 지팡이로 고친 모습을 그려 보았다.
과거의 역사와 삶은 말이 없지만 유물을 통해 그 영혼의 숨결을 추스리게 한다.뿐만 아니다. 간디 기념관 전시작품에서 나의 시야에 클로즈업 되어 오는 그림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수많은 인도국민이 두 팔로 들어 올린 기다란 천으로 길을 만들고 그 길을 붓다와 예수 그리고 간디가 이끌어가는 인도의 그림이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사람과 소 그리고 개들이 자유롭게 더불어 사는 나라 인도 그것은 부처님의 자비와 평등사상, 그리고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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