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따뜻해지고 행복한 12월
검색 입력폼
 
오피니언

마음은 따뜻해지고 행복한 12월

申祉浩 전 영암초등학교 교사경기도 율동초등학교장 퇴임현 한국문인협회 회원

며칠 전, 내가 속한 등산동아리의 올 마지막 산행을 마치고 사당동에서 모임의 마무리를 했다. 뒤풀이 회식을 하고 나오니 도심의 야경이 화려했다. 그 속에 성탄의 샹들리에가 벌써부터 등장을 해서 반짝거리고 있다. 아 12월, 한 해가 저물고 있구나 생각하니 밖으로만 나돌던 기운이 내 안에 차분히 내려앉는 것 같다. 저녁이 되면 포근한 집으로 찾아오듯이, 1년을 정신없이 살아온 사람들은 따뜻한 둥지가 그리워질 때다.
그날 산길에서 우리 앞서 가는 50대로 보이는 남녀 일행이 배낭 뒤에 ‘행복한 부부 산악회’란 리본을 달고 있었다. 차가운 산 공기 속에서 어쩐지 그들이 따뜻해 보였다. 부부간에 행복을 만들면서, 또 행복의 동아리를 이루고 있구나 생각했다. 요즘 행복이란 말이 잘 화두에 오른다.
우리네 삶이 팍팍해져서 그럴까. 어떤 모임의 구호나 건물에 붙어있는 상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점사업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인생의 지침서에는 의례 단골로 끼워져 있다. 심지어 신체의 질환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권하는 책 이름마저 ‘두려움에서 벗어나 행복 찾기’ 등으로 나와 있다. 이 흔한 ‘행복’이란 어휘대로 두루두루 행복을 누렸으면 얼마나 좋으랴.
행복은 안에서 뿌듯이 차오르는 만족감이라고 한다면 맞는 말일까. 누가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닌, 내가 스스로 느끼는 것이라야 참다운 행복이라 할 것이다. 12월은 찬 바람이 몰아쳐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달이다. 내 안을 살피고 내 이웃을 돌보면서 행복을 채우는 달이다.
날마다 신문을 펼쳐들면 나는 뒤쪽 ‘사람들’란을 먼저 살핀다. 사람 사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그 쪽에 실리기 때문이다. 가난 속에서, 병고 속에서, 부모 없는 설움 속에서, 모진 역경을 이겨내면서 꿈을 잃지 않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평생 어렵게 모은 돈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쾌척한 사람들의 이야기,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 감동적인 사연들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세찬 바람에 유리창이 덜컹거리고 하늘에선 금방 눈이라도 쏟아질 듯 찌푸린 오늘 아침에도, 신문지상에는 밝고도 맑은 스토리가 실려 있다. 누덕누덕 기운 옷에 엉클어진 더벅머리각설이로 변장한 50대의 회사원, 그는 어느 자동차공장에서 밤과 낮을 교대로 일하며 사는 평범하고 성실한 직장인이다. 23년 전, 한 고아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그가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을 즐겁게 하고 꿈을 갖게 할까’ 생각을 하다가 이 각설이타령을 떠올렸단다. 낮과 밤, 그가 근무를 하지 않는 시간에 그는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서 각설이로 그들을 즐겁게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각설이 연습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르면서, 나이들어 외로운 독거노인, 힘겹게 삶을 이어가는 장애인, 부모의 사랑을 모르는 보육원생, 타국생활에 어설픈 외국인 노동자, 이들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고단함과 서러움을, 그는 구성진 목소리로 훨훨 날려버리게 하고 깔깔거리는 웃음으로 승화시켜 준단다. 그의 몸은 고되지만 마음만은 한없이 따뜻하고 행복하리라.
옛날부터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씰이란 게 있어서 결핵환자들을 잊지 않았고, 학생들은 국군아저씨들에게 위문편지를 썼다. 번화가나 지하철역처럼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는 구세군의 땡그랑땡그랑 종소리가 12월의 훈기를 더 하게 했다.
이때 쯤 하늘에서는 눈발이 탐스럽게 날리고 땅에서는 사람들이 마지막 무슨 일인가 마무리 하려는 듯 바쁜 걸음으로 종종거렸다. 요즘에는 김장나누기를 하거나 줄줄이 서서 연탄을 배달을 하며 외로운 이웃들을 찾는 모습이 TV화면을 아름답게 비추곤 한다. 12월은 듣고 보는 것만으로 벌써 마음은 설레이고 가슴은 뿌듯해진다. 서로 잊지 않고 챙기는 마음, 서로 나누는 마음이 12월을 행복하게 한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옛 시절이 그리워진다. 울타리 너머로 서로 나누며 살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우리는 지금 문명의 첨단기기들이 모든 일을 알아서 척척 해주는 디지털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마음 따뜻한 행복은 어쩐지 멀어지는 것 같다. 마음씀이 차분하지 못하고 겉으로만 맴도는 듯 해서다. 그래서 마음만은 하나하나 챙기는 아날로그시대로 남아있으면 한다. 무슨 일에나 내 정성이 깃들어 있어야 사는 맛이 날 것 같다. 그런 마음으로 무심히 지냈던 일가친척도 찾아보고, 마음이 조금 엇갈렸던 이웃들과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나눈다면 얼마나 따뜻한 세상이 될까.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고 한다. 늦가을부터 웅크리게 하더니 12월의 본색이 만만치 않다. 나라의 경제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기불황으로 이어질 전망이란다. 일자리가 마땅찮은 젊은이들이 더 추워 보인다. 밖에서는 대선 주자들의 목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데 제발 실적 위주의 수치만 높일 게 아니라, 마음에 차오르는 행복지수를 높여주었으면 한다. 그래서 마음 따뜻한 일이 많이 생겼으면 한다.
한 해를 보내면서 나 자신을 들여다 본다. 더러 보람 찬 일이 있으면 손가락으로 헤아리며 희열감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그러나 옹졸하게 내 욕심에만 급급했던 일도 많았던 것 같다. 그런 일은 훌훌 털어내서 차디 찬 겨울 눈발 속으로 날려버리고 싶다. 행여 언짢거나 괴로운 일에는 나름대로의 가치를 매겨 두련다. 이렇게 좋은 일 궂은 일 잘 버무려서 삭히면 마음 속에 소중한 삶의 밑천이 되지 않을까.
예보대로 낮부터 눈이 많이 내리고 있다. 탐스런 함박눈이다. 서울에서는 눈으로 겨울을 보는 첫눈인 셈이다. 12월은 춥지만, 꼭 춥지만은 않은 달이다. 얼마든지 마음은 따뜻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달이다.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오늘의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