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야 면장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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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야 면장을 하지

임 춘 모 덕진면장

우리말 속담에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이 있다. 필자는 이 속담이 최근까지만 해도 ‘일선 행정업무나 면민들의 생활상을 속속들이 알아야만 면정을 잘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의 면장(面長)인 줄 알고 있었다.
면장 발령을 받은 지 10개월이 되어간다. 얼마 전 서울에서 유명한 갈비집을 운영하신다는 재경 향우 한 분이 고향 방문차 왔다면서 면장실을 찾아오셨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분은 대뜸 “알아야 면장을 할 텐데 도에서 내려온 낙하산 면장이라 어려움은 없느냐?”고 물으셨다.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고 면전에서 “낙하산”이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으나 나는 부족하지만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 분이 가신 후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의 유래가 문득 궁금해졌다. 국립국어원에 문의도 해보고 인터넷 여기저기 사이트를 서핑도 해보았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은 지금까지 필자가 알고 있었던 또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해 오던 그런 의미의 말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럼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의 유래는 무엇일까? 『논어』의 양화(陽貨)편에 의하면 공자가 아들 리(鯉)에게 수신제가(修身齊家)에 힘쓰길 강조하면서 “너는 주남(周南), 소남(召南)의 시를 공부했느냐?”고 물으며 “사람이 이것을 읽지 않으면 마치 담장을 마주대하고 서 있는 것과 같아 더 나아가지 못한다(陽貨.10)”고 말한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주남, 소남은 시경(詩經)의 편명으로 그 내용이 수신(修身)과 제가(齊家)로 이를 공부하라고 한 것이며, 면장(面牆)하면 견식(見識)이 없음을 일컫는 것이고, 면장(免牆)하면 그런데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즉, ‘알아야 면장(원어는 免面牆임)을 한다’는 말은 본래 ‘공부에 힘써 지식도 넓히고 분별력을 키우라’는 의미인데 오늘날 어의(語義)가 전성(轉成)되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 말의 유래야 어떻든 필자는 요즘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이 논어에 나오는 본래의 그 뜻이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잘 못 알고 있었던 ‘많이 알아야 면정을 잘 살필 수 있다’는 그런 의미로 통용되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군이나 읍면에서 공직생활을 해본 경험도 없고 지역민들의 생활상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그동안 공직경험을 바탕으로 직원들과 지인들의 의견을 들어가며 면정을 수행하려다 보니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지금까지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대로의 그런 의미가 새삼 강하게 마음에 와 닿는다.
하지만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면정을 수행해 나가는 것도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면정을 수행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나름대로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또한, 역으로 생각해보면 면정을 맡아 주민들과 고락을 함께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선배공직자들이 지방행정을 제대로 알고 싶으면 반드시 면장을 한 번쯤 경험해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었나 보다.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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