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매 타고 Hi Seoul!’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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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매 타고 Hi Seoul!’에 다녀와서

조 동 현
영암문화원 보조교사
2014년1월17일 밤8시, 나는 송평리 마을 황량한 들판의 모퉁이에 있는 외딴 집을 찾아 갔다. 작고 허름한 집은 캄캄하고 음산하였다. 대문 없는 집에 들어서서 아이를 부르니 한참 후에야 잠을 자다 일어난 듯 눈을 비비면서 H군(영암초 2학년)이 나왔다. 어둠속에서 나를 알아보더니 “할아버지!”하고 달려들어 내 허리를 꼭 안았다. 아이가 이끄는 대로 방으로 들어가 있으니 얼마 후에 김치공장에 다녀 온 할머니가 들어왔다.
나를 보자마자 “저 놈이 마을회관에서 할머니들이 화투치려고 놓아 둔 돈 150원을 훔쳤어요.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매 좀 때렸소. 저 놈을 데리고 서울 못 갑니다.”하고 소리치는 것이다.
당초 영암문화원에서 기획한 ‘썰매타고 하이서울’ 여행을 가기로 했다가 못 간다는 까닭이 150원에서 출발한 것이다. 도시 아이들은 길거리에 떨어진 돈도 줍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이번 행사의 구성원은 가급적 저소득층 가족 위주로 추진됩니다.”하고 귀띔하던 사무국장의 말뜻을 새삼 깨달았다.
아이들과 아버지, 아이들과 어머니, 아이들과 할머니, 아이들과 할아버지, 등 뒤죽박죽 모인 우리들은 대나무 썰매를 만들 때는 아버지는 모닥불 피고 아이들은 대쪽을 구어 구부렸고, 눈썰매를 만들 때는 할머니는 붙잡고 손자는 썰고, 할아버지가 붙잡고 손자가 못을 박고, 손자는 구멍 뚫고 엄마는 끈을 묶으며 사흘간을 열심히 만들었다.
위험한 공구가 곳곳에 널려 있는 공방 안에서 아이들이 놀다가 다칠세라 걱정했지만 모두 기우였다. 어쩌면 그토록 아이들과 보호자의 호흡이 맞아 떨어지는지 진지하고 화기애애한 속에서 작업이 진행되었다. 교실에서는 그토록 장난꾸러기의 문제아들이 이토록 스스로 열중해서 활동하다니 정말 딴 어린이들 같았다. 이렇게 만든 썰매를 싣고 우리들은 18일 새벽에 서울로 출발하였다.
국회의사당, 국립박물관 등을 거쳐 남산의 유명한 왕돈가스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서울시청 스케이트장에 갔다. 보호자들은 철망밖에 늘어서서 아이들이 처음으로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을 대견스레 바라보았다. 조심스레 발놀림을 하다가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치면서도 킥킥거리는 아이들은 그저 즐겁기만 하였다. 저녁이 늦어서야 남산에 있는 유스호스텔에서 달콤한 잠을 청했다. 19일 아침 일찍 남산 한옥마을을 견학한 후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을 찾아 만들어 온 눈썰매를 탔다. 아이들이 타면 보호자가 끌고 보호자가 타면 아이들이 끌고, 타는 아이들이나 끄는 할머니, 타는 아버지나 끄는 아이들, 넘어지고 킥킥거리면서 시간도 추위도 모두 잊었다. 때마침 어린아이들과 함께 한 일본인 여행객들도 우리가 만든 눈썰매를 빌려 타고 함께 즐거워하였다.
손자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인사동길을 거닐고 아들딸은 아빠, 엄마의 팔에 매달렸던 썰매타고 Hi~ SEOUL~! 필리핀에서 시집온 M여사의 개구쟁이 세 아들(초등1,4,6학년)은 이번 여행 중 귀염둥이 역할을 톡톡히 했다. 자기에게 준 과자를 먹지 않고 어른들의 입에 넣어주고 돌아 다녔을 정도였으니까! 엄마 없이 자란 P군(초등 5학년)은 술 취한 날이 많은 아빠와 함께 생활하면서 난폭한 소외계층에 속하였다. 그는 이번 여행 중 언제나 아버지의 행방을 챙기고, 친구에게 먹을 것, 앉을 자리, 썰매타기 순서를 양보하는 아름다운 행실을 보여 주었다. 혼잡한 서울 거리에서 아빠와 아들을 손을 꼭 잡고 서로 챙기고 잠자리에서는 아빠 품에서 곤하게 잠들었다. 매서운 추위에도 손자의 썰매 타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할머니, “마을회관에서 할머니들 노름돈 150원을 훔쳐서 매 좀 때렸소”하고 소리친 할머니의 모습은 이렇게 변해 있었다. 할머니의 입에 먹을 것을 넣어 주는 H(초등2학년)군의 모습을 보면서 늙은 까마귀에게 먹이를 주어다 먹인다는 새끼 까마귀를 연상했다.
‘썰매타고 하이서울!’은 사람 사는 맛을 느끼게 해준 행사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손녀 손자들이 어우러져 인륜의 따뜻한 정을 나눌 수 있게 불을 지펴준 행사였다. 참가자 40여명은 세밀하고 어김없는 계획으로 프로그램을 이끌어준 영암문화원 관계자의 정성에 아낌없는 칭찬을 보낸다. 이분들이 끊임없이 불어 주신 훈풍에 돛을 달고 우리 Hi~ SEOUL~!의 배를 타고 무사히 귀향하였음을 감사드립니다. 2014년2월20일 아침.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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