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의 눈부신 자태에 넋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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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의 눈부신 자태에 넋잃다

김애경의中 쓰꾸냥산 트레킹

정상에 오르니 감격의 눈물이라도 흐를 것만 같았다.
사람들이 이 기분에 산에 오르나보다. 발아래로 펼쳐지는 구름들의 향연, 만화에서 신선이 사는 곳을 묘사할 때 나오던 풍경과 같다면 상상이 될까…….
어제 저녁 약간의 코피와 함께 잠들 기전 까지 간간이 아프던 머리도 아침이 되니 말끔했다.

상쾌한 기분으로 시작한 산행은 스틱과 함께 발걸음 가볍고 경쾌하게 노우원자를 향했다.
드넓은 초원지대에는 온통 들꽃의 만발이고, 저 멀리 능선엔 골짜기의 물줄기가 시원스럽게 흐른다. 또 하늘은 어제까지 내리던 비를 뒤로하고 파아란 하늘과 더불어 뭉게뭉게 뛰어 놀고 있는 하얀 구름을 벗 삼아 세상의 전부를 가진 양 초록의 푸른 들판에 거만하게 노니는 야크들이 부럽기만 하다.

일행 중 누군가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노우원자에서 보자는 말을 뒤로 하고 앞장서간다.
출발 전 “앞사람 생각하지 말고 자기페이스를 끝까지 지키면서 등반하라”는 일행 분들의 충고를 위로 삼아 끝까지 꼴찌를 고수한 필자는 저 멀리 노란 텐트가 보이는 노우원자(3,860m)를 눈으로 확인하니 5시간(12km)을 걸어오면서 느꼈던 몸의 피로가 한순간 사라졌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우린 텐트에서 한 시간 정도 휴식을 취한 뒤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느니 내일 오를 과도영(4,200m) 고소적응을 위해 말을 타고 미리 고산적응도 할겸 경치구경이나 떠나자는 의견을 누군가가 피력했다. 필자가 어제 저녁 약간의 코피와 머리가 아팠다는 말을 하자 그게 고소증이라고 누군가가 알려줬다. 고소병은 사람마다 약간 다른 증상이 나타난다는 말과 함께…….

그렇게 말하니 필자에게 고소적응이 꼭 필요한 것 같아, 배낭에 카메라와 고어텍스 재킷을 챙겨 일행에 함유했다.

필자가 여자라고 일행 분들은 하얀 말을 권한다. 첨타는 말이라 약간 무섭긴 했지만 걸어오면서 느꼈던 조바심이 없어선지 느긋하게 경치를 즐기며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언덕을 지나 2시간가량 가서 푸른 초원을 배경삼아 말을 이끌어준 장족들과 기념촬영도 한 다음, 걸어서 40여분가량 올라가니 온통 바위로 만들어진 스크리지대의 산이 하나 버티고 서있다. 모두들 이곳이 내일 우리가 올 과도영 근처가 아닐까 하면서 더올라가 보자고 했지만, 필자는 너무 머리가 아파 오르길 포기하고 언덕에 잠시 주저앉아 일행중 한분이 가르쳐준 머리를 15도쯤 들고 머리를 좌우로 돌리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게 고산병이구나 생각하니 머리가 더 아프고 속이 울렁거렸다. 계속 이 상태면 내일 산행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밀려왔다. 여기까지 왔는데 고지가 저긴데 생각하니 속상하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복잡한 맘을 안고 베이스캠프로 내려오니 오늘 저녁은 닭볶음탕이란다.
자루에 산닭을 가져와 이곳에서 직접 잡아서 쿡과 인솔자가 합작해 만든 닭볶음탕을 먹은 둥 마는 둥하고 고소 약을 한 알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보지만 정신이 오히려 맑기만 했다.
야속하게 텐트밖엔 비가 폭포처럼 내리고 있다.
5시간 산행, 드디어 과도영 도착

어젯밤 내리던 비가 언제 그랬냐는 듯 아침이 되니 말짱한걸 보니 비도 우릴 비켜 가나보다.
비 덕분에 오늘 산행도 시원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9시 30분 노우원자(3,860m) 베이스캠프를 출발 산행을 시작했다.

오늘만 잘 가면 내일은 따구냥산 정상에 화룡점정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대화자의 맑은 호수와 들꽃을 벗 삼아 기념촬영을 한 우리에게 그곳 움막에서 야크를 키우는 꼬마가 야크젖 두병을 내민다. 현지가이드가 야크젖 맛이나 보라고 사준 것이다. 그런데 다들 표정이 별로다. 야크젖이 약간 시큼한 맛이라 입맛에 안 맞나 보다.

필자가 가방에서 간식으로 가져온 사탕과 초콜릿을 몇 개 꺼내 야크 젖을 가져온 꼬마에게 전했다. 꼬마는 부끄러운지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귀까지 붉어지며 방긋 웃는 꼬마의 천진함에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가파른 언덕길 그리고 야크들의 천국 같은 동산을 지날 때쯤 일행 중 한분이 무얼 잘못 먹었는지 계속 힘들어하신다.

어제까지 일행 중 꼴찌를 지키던 내가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걸 보니 몸이 많이 불편한 것 같다. 남의 일 같지 않았지만 내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필자는 아무 도움이 되어 주지 못하고 과도영을 향해 앞으로 가고 있다.

필자는 혼자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사진도 몇 컷 찍어보고, 파아란 하늘도 한번 쳐다보며 온갖 여유를 부리며 조금씩 과도영에 한 발짝 내딛고 있다.

어제 한번 적응해선지 머리는 아프지 않았지만 멍한 게 몸에 조금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이럴 때 물을 많이 마시라는 충고가 생각나 수통의 물을 마셔보지만 멍한 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새벽 4시 30분쯤 출발하려면 일찍 취침해야하는데 왜이리 정신이 맑아지는지. 어느 순간 잠든사이 오늘도 비는 내리고 있었다.
따구냥산 정상에 화룡점정하기

새벽 3시 30분 머리가 너무 아프고 속도 매스꺼웠다. 가이드에게 두통약 한 알을 얻으러나가는데 속이 울렁거리고 힘이 없다. 그냥 바닥에 주저앉아 욱해보지만 신물만 넘어온다. 이 상태로 6시간 가까운 길을 오를 수 있을까 걱정스럽기만 했다.
어렵게 여기까지 오게 된 긴 여정을 생각하니 여기서 멈출 수가 없었다. 약을 먹고 잠시 누웠다가 4시 40분쯤 산행할 차비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다들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랜턴을 켜고 처음 산행을 시작할 때처럼 후미에 서서 앞사람의 불빛만 쫓아서 산행을 시작했다.

오늘 따구냥산은 필자에게 그렇게 쉽사리 자신의 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나 보다.

한참을 간 후에야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갔던 바위들을 뒤로 하고 봉우리 사이로 점점 운해가 거치기 시작한다. 누군가 “와! 저기 좀 봐”라고 소리쳤다. 저 멀리 보이는 설산과 따구냥산의 눈부신 자태가 시야에 들어왔다.

근방 손에 닿을 것 같은 운해와 어울려 우뚝 솟은 따구냥의 절경을 두 눈으로 확인하니 점점 마음은 조급해 지는데, 발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일행 중 세분은 벌써 정상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가이드는 이제 조금만 가면 정상이 다고 필자를 독려하지만, 나 자신도 내 몸을 어찌 못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 그렇게 비몽사몽 기어가듯해서 4시간 40여분 만에 드디어 따구냥산(5,335m)을 품에 안았다.

정상에 오르니 감격의 눈물이라도 흐를 것만 같았다. 사람들이 이 기분에 산에 오르나보다. 발아래로 펼쳐지는 구름들의 향연, 만화에서 신선이 사는 곳을 묘사할 때 나오던 풍경과 같다면 상상이 될까…….

구름 속에 이 지친 몸을 던지면 좋겠다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해보며, 간단한 기념촬영을 하고 하산하려니 이 멋진 운해를 언제 다시 보게 될까하는 아쉬움 때문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이드는 고산이라 몸에 무리가 간다고 자꾸 내려가자고 재촉하지만…….

올라 올 때 그렇게 힘들게 했던 산인데 막상 두고 내려가자니 자꾸 미련과 아쉬움만 남는다.

따구냥산을 영원히 기억하픈 마음에 제일 눈에 들어오는 작은 돌멩이 하나를 주워 배낭에 담았다. 이곳이 필자가 태어나 처음으로 화룡점정(畵龍點睛)한 국외 산이니 영원히 기억할 만한 기념품이 필요하리라.

주위를 다시 한 번 둘러보면서 두 눈에 꾹 눈도장을 찍은 다음 먼저 내려가신 세분을 제외한 나머지 일행들과 베이스캠프가 있는 과도영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오는 길에 자꾸 뒤에서 따구냥산이 잡는듯하여 뒤돌아보길 몇 번…….

이제 과도영 베이스캠프에 내려가 아침을 먹고, 말을 타고 내려가 쓰구냥 산장에서 하루를 묵으면 내일부터는 집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기분이 왜 이리 허전한지…….

많은 사람들이 산에서 오르면서 “다시는 안 온다”고 하다가 몇일 안지나 또 산에 오를 계획을 세우는 이유를 이제는 조금이나마 알 것도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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