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원론에서 배우는 '수요의 가격탄력성'이라는 개념을 생각하면 특정 상품의 가격인상은 소비(수요)감소를 낳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담배의 소비는 술과 함께 가격의 영향을 덜 받는다. 이른바 '비탄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격을 마구 올리면 아무리 비탄력적인 상품일지라도 소비는 줄게 마련일진데 담뱃값을 80%나 올린 이유는 뭘까? 세계보건기구의 50% 인상 권유를 훨씬 넘어설 바엔 아예 1만원(300% 인상)으로 올려 국민들의 흡연 욕구를 아예 없애버리면 안 될까? 이렇게 되면 그야말로 어린 청소년들의 금연에는 특히 효과만점(?)일 텐데….
국민 건강을 전담하는 정부부처인 보건복지부가 담뱃값을 4천500원으로 인상하기로 한데는 '경제학적 이유'가 있다. 지난 6월 조세재정연구원이 담배가격인상과 수요의 통계를 기초로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가 그것이다. 조세재정연구원은 이를 토대로 담뱃값이 4천500원 정도일 때 세수가 극대화된다는 보고서를 냈다. 6천원을 넘어가면 담배소비가 줄어 세입이 오히려 마이너스로 돌아선다. 쉽게 말하면 아무리 가격이 올라도 담배소비는 크게 줄어들지 않지만, 일정 한도를 넘어서면 못 말리는 애연가라도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는 선이 있는데 4천500원은 담배소비를 줄이지 않고 세입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바로 그 한계점이라는 계산이다.
담뱃값 인상의 논란 가운데 첫 번째는 과연 그 목적이 국민의 건강이냐, 아니면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해서냐다. 보건복지부는 전자를 그 이유로 내세우나 담뱃값 인상에 담긴 이 '경제학적 이유' 때문에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 우리나라 담뱃값의 '구조'를 보면 이는 더 분명해진다. 담뱃값은 ▲유통마진 및 제조원가 39% ▲담배소비세 25.6% ▲국민건강증진부담금 14.2% ▲지방교육세 12.8% ▲ 부가가치세 9.1% ▲폐기물 부담금 0.3% 등이다. 담뱃값의 61%가 세금이다. 즉 복지부는 국민 건강이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해 담뱃값을 올리겠다는 것이 분명하다.
담뱃값 인상의 두 번째 논란은 서민증세이자 서민들의 삶 옥죄기라는 점이다. 똑같은 담뱃값이긴 하지만 부자가 사든, 가난한 사람이 사든 똑같은 세금을 부담한다는 점에서 역진적이다. 더구나 가난한 사람일수록 흡연율이 더 높다는 사실은 각종 통계조사에 나와 있다. 한국납세자연맹의 자료에 의하면 담뱃값이 정부안대로 오르면 하루에 한 갑의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가 내게 될 연간세금은 기존 56만5641원에서 2배 넘게 증가한 121만1천70원에 이른다. 이는 9억짜리 주택을 가진 사람이 내는 재산세와 같고, 연봉 4천745만원인 근로소득자가 연간 평균 내는 근로소득세 124만9411원과도 맞먹는다. 하루 한 갑의 담배를 피우는 농부는 서울에 9억짜리 집 한 채 가진 사람이나 대기업에 갓 입사한 회사원이 연간 내는 세금을 추가로 더 내야할 상황이 되는 것이다.
담뱃값 인상의 또 다른 문제는 부족한 세수를 위한 근본대책인 '부자증세'는 외면하고 있다는 데에도 있다. 바로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우리사회 불평등의 심화를 더욱 부채질 할 것이라는 우려다. 동국대 김낙년 교수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전체 소득에서 상위 10%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2년 44.9%에 이르렀다. 불평등 국가의 대표사례로 꼽히는 미국(48.2%) 수준에 근접해 있다. 요즘 「21세기의 자본」이라는 책으로 뜨고 있는 프랑스 경제학자 피케티 등이 만든 '세계 최고소득 자료집'(WTID)에 의하면 한국은 28개 등재국 가운데 네 번째 불평등국이다. 일본(40.5%, 2010년), 영국(39.2%, 2011년), 프랑스(32.7%, 2009년) 등을 앞질렀다. 상위 1%가 차지하는 비중도 12.2%로 일본(9.5%)보다도 높다. 불평등이 초래할 불행은 과거 민주화의 위기 때완 비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현 정부가 이 불평등을 시정할 의지조차 없다는 점은 무책임해도 너무 무책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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