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에서 환웅은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주면서 동굴 속에서 100일간 햇빛을 보지 말라고 이른다. 호랑이는 참다못해 동굴 밖으로 뛰쳐나갔으나, 곰은 삼칠일을 견딘 결과 인간이 되었다. 삼칠일(三七日)은 다름 아닌 산모가 아기를 낳은 후 행동을 가장 조심해야 하는 기간이다.
'100일'이 가장 보편적으로 쓰인 경우는 '백일잔치'다. 의료시설이 제대로 보급되어 있지 않고, 위생관념도 보편화되어 있지 않았던 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영아사망률은 매우 높았다. 따라서 아이가 출생한지 100일이 지나면 일가친척들에 인사시키며 아이의 평안을 기원하는 기회로 삼았다. 어떤 곳에서는 수수팥떡을 만들어 무병장수하도록 액막이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백설기를 만들어 일가친척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특히 백일 떡은 100집과 나누어 먹어야 하고, 백집에서 얻어 온 백조각의 천으로 옷을 해 입히면 아이가 건강하게 백수를 누린다는 속설도 있다. 보건의료의 발달과 함께 영아사망률이 낮아지고 핵가족화하면서 점점 퇴색해가고는 있으나, 백일잔치는 백일치성이나 백일공덕처럼 갓난아이가 삼칠일의 첫 금기의 기간을 지나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준비가 비로소 끝났고, 하나의 완전한 인간으로 대접받게 됐다는 의미를 가진 뜻 깊은 행사다.
'100일'은 인간의 삶 뿐 아니라 죽음에도 연관되어 쓰인다. 삶과 죽음이 결코 따로따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죽은 이(亡者)를 위한 백일재(百日齋)는 죽은 지 100일째 되는 날의 불공(佛供)이다. 사십구재(四十九齋)가 죽음 이후의 세계로 진입할 준비를 마치는 단계라면, 백일재는 완전한 저승의 존재로 변화되는 단절의 의미라고 한다.
백(百)은 풍요와 장수, 다복(多福)을 뜻하기도 한다. 음력 7월15일 백중날은 백가지 나물을 무쳐먹을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산물이 풍부해지는 풍요로운 명절 가운데 하나다. 백수(百壽), 백복(百福), 백자(百子) 등의 그림은 장수와 다복, 다남을 상징한다. 또 백성(百姓)은 온 국민을, 백겁(百劫)은 오랜 세월을 의미한다.
'100일'은 이처럼 속설 또는 풍습으로만 전해오는 비(非)과학적 숫자가 아니다. 과학적으로도 사람이 오랫동안 자신에게 굳어져 온 좋지 않은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변화시키는 데는 반드시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한데 그 기간이 100일이라는 것이다. 책 「아침형 인간」(아침을 지배하는 사람이 하루를 지배하고, 하루를 지배하는 사람이 인생을 지배한다는 내용)의 저자인 일본의 사이쇼 히로시는 "아침형 인간이 되도록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밤 11시에 잠자리에 들고 새벽 5시에 일어나는 훈련 습관을 반드시 100일 정도는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을 정도다. 사이쇼 히로시는 우리 몸에 오랫동안 배인 나쁜 습관을 벗어던져 버리고 새로운 습관을 정착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을 100일로 본 것이다.
'100일'이 적어도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위한 준비기간이 되기 위해서는 그냥 흘려보내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사이쇼 히로시의 지적처럼 자신의 모든 역량을 전심전력의 심정으로 집중했을 때 우리의 뇌는 그것을 프로그래밍하고, 우리의 삶을 그 기억된 새로운 습관대로 바뀌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1일 출범한 민선 6기 지방자치가 지난 10월8일로 '100일'이 됐다. 지자체별로 새 출발을 위한 장밋빛 비전제시가 한창이다. 지난 100일 동안 저마다 지역을 어떻게 가꿔갈 것인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곳도 많고, 그럭저럭 허송세월한 지자체도 많다. 영암군은 과연 이 중요한 '100일'을 어떻게 보냈을까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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