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서면 도장리 출신
미국 영암군 홍보대사
쉰 살 되던 해, 글 한 편을 썼다. "50이라는 나이는 무엇을 새로 시작하기에는, 아스라이 구름 덮인 산 정상을 향해 신발 끈을 졸라매기엔 너무 늦어버린 나이인가…"로 시작하는 글이었다.
세월이 흘러 60이 되었다. 예순 살은 사주도 보아주지 않는 나이라 했다. 사주라는 게 인생 60이 끝인 시절에 풀이를 해놓았기 때문이라 했다. 조선시대 평균나이가 46세, 공자님 시대는 38세였다 하지 않던가.
그 무렵 어느 날, 시 한 편을 만났다. "인생이란 늘 지금부터야. 그리고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그러니 약해지지 마!" 아흔 두 살 먹은 할머니가 쓴 글이었다. 아흔 살 노인이 '인생은 지금부터'라고 하는데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낯이 후끈거려 어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 버리고 싶었다.
일본의 시바타 도요 할머니. 92세에 시를 쓰기 시작해 99세에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발간했다. 시집은 만부만 팔려도 성공이라는 일본에서 158만부의 판매를 기록했다. 그녀의 시집은 한국을 비롯해 대만, 네덜란드, 이탈리아, 독일에서 출판됐다.
유복한 쌀집의 외동딸로 태어났지만 10세 때부터 음식점 더부살이를 했던, 배운 것도 없이 늘 가난했던 일생. 결혼에 한 번 실패했고, 33세에 주방장인 두 번째 남편과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얻고 사별한 후, 20년 가까이 혼자 살면서 너무 힘들어 죽으려고 했었던 노파.
할머니는 말한다. "제가 시를 쓰게 된 계기는 아들의 권유였습니다. 허리가 아파서 취미였던 무용을 할 수 없게 되어 낙담한 나를 위로하기 위해 아들이 글쓰기를 권했던 것입니다. 아흔을 넘긴 나이였지요."
도요 할머니의 시는 쉽다. 술술 읽힌다. 누구라도 그 뜻을 담박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시는 이렇게 써야한다고 가르쳐주는 것 같다.
<저금>이라는 시를 읽어보자.
"난 말이지, 사람들이/친절을 베풀면/마음에 저금을 해둬//쓸쓸할 때면/그걸 꺼내/기운을 차리지//너도 지금부터/모아두렴/연금보다/좋단다."
쉬운 말로 조곤조곤 우리를 깨우친다. "나이를 먹을수록/하나씩 하나씩 잊어 가는/기분이 든다// 사람 이름/여러 단어/수많은 추억//그래도 외롭다/여기지 않게 된 건/ 왜일까//잊어 가는 것의 행복/잊어가는 것에 대한 포기//…"
나이가 늘면 기억력이 쇠퇴해지기 마련이다. 이것을 잊어 가는 것의 행복이라고 말하는 시인의 이야기는 같은 처지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할머니는 2011년 6월 자신의 100세 생일을 기념하는 두 번째 시집 <100세>를 펴냈다.
그 시집에 있는 '100세'라는 시에서 "나, 내년이면/ 100세가 돼/……/ 100세의 결승선을/ 가슴 활짝 펴고 지날 거야."라고 말했다.
그녀는 말 그대로 100세의 결승선을 지나고, 지난달 20일 102세의 나이로 별세 했다.
시바타 도요할머니의 말씀이 귀에 쟁쟁하다. "인생이란 늘 지금부터야"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