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록위마(指鹿爲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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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록위마(指鹿爲馬)

교수신문이 2014년을 대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선정했다. 응답한 724명의 교수 중 201명(27.8%)이 선택했다고 한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컫는다'는 뜻이다. 사기(史記)의 「진시황본기」에 조고(趙高)가 황제에게 사슴을 말이라고 우기고, 진실과 거짓을 제멋대로 조작하고 속였다는 데서 유래했다.
조고는 진시황을 섬기던 환관이었다. 시황제가 죽자 유조(遺詔)를 위조해 태자 부소(扶蘇)를 죽이고 어린 호해(胡亥)를 황제로 옹립했다.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기 위해서다. 황제를 온갖 환락 속에 빠뜨린 조고는 교묘한 술책으로 이사(李斯)를 비롯한 중신들을 처치하고 승상이 되어 조정을 완전히 장악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입 다물고 있는 중신들을 떠보기 위해 술책을 썼다. 사슴 한 마리를 어전에 끌어다 놓고 '말'이라고 우긴 것이다. 황제 호해가 "어찌 사슴을 말이라 하는가?"라고 반문하자 조고는 중신들을 둘러보며 "저게 뭐 같소? 말이오, 사슴이오?"라고 물었다. 그러자 대부분의 중신들은 조고가 두려워 '말'이라고 답했고, 소수만이 '사슴'이라고 사실대로 말했다. 사슴이라고 말한 이들은 나중에 죽임을 당했고, 황제 호해는 자신의 판단력을 의심하며 정사에서 손을 뗐다고 전한다.
"2014년은 수많은 사슴들이 말로 바뀐 한 해였다. 온갖 거짓이 진실인양 우리사회를 강타했다. 사회 어느 구석에서도 말의 진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연말까지도 '지록위마'는 거듭됐다. 우리는 사슴을 보기나 했던 것일까. 경마장에서 말만 봐왔기 때문에 모든 짐승들이 '말'로 보이는 것이 아닐까. 말이 달려가기만 하면 좋을 텐데 이제는 공간을 날아서, 아니 공간도 3차원 공간을 넘어 사이버공간으로 날아서 사슴들을 짓밟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사슴도 말도 구분 못하는 청맹과니들로 이뤄져 있는 사회는 아닐까. 2014년은 우리 가슴을 '말'로 가득 채웠던 한 해였다. 우리 삶을 수많은 '말'들이 밟고 또 밟고 지나갔다. 우리는 '말'만 보았지 '말'의 본 모습은 보지 못했다. 사회 어느 구석에서도 말의 진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아마 우린 눈을 '뜨고'있지만 가슴은 '닫고' 살았나 보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사슴이 사슴이길 기대해 본다."
'지록위마'를 추천한 곽복선 교수(경성대 중국통상학과)의 설명이 가슴에 와 닿는다.
교수들의 설명 필요 없이 2014년은 세월호 참사부터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문제의 본질을 속이는 데 급급했다. 빤한 거짓말로 국민들을 속였다. 그만큼 진실을 향한 열망도 컸다. 교수들이 2014년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지록위마'를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위선으로 진실을 가려 사태의 본질을 외면한 정부와 권력자들을 향한 따끔한 충고다.
교수들은 무능한데다 정직하지도 못한 정부에 대해 '삭족적리(削足適履)'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지록위마와 불과 4.3% 차다. 회남자(淮南子) 설림훈(說林訓)에 나오는 말로, '신발이 너무 작아 발에 신발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발을 자르려 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원칙에 어긋나는 어리석은 행동을 뜻한다. 교수들은 세월호를 포함한 모든 사고와 부조리한 현실, 그리고 이를 덮고 넘어가려는 부적합한 대책들 모두 삭족적리의 자세에서 기인했다고 질타했다. '지통재심(至痛在心)'과 '참불인도(慘不忍睹)'를 선택한 교수들도 있었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너무 컸음이다.
교수들은 2013년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도행역시(倒行逆施)'를 선정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국민들 기대와는 달리 역사의 수레바퀴를 퇴행적으로 후퇴시키는 정책과 인사가 고집되는 것을 염려하고 경계한다는 뜻에서였다. 2014년엔 급기야 위선이 진실을 가리는 암담함이 계속됐으니 교수들의 걱정이 현실이 된 셈이랄까?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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