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연립정부 실험의 전망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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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국에서 연립정부 실험의 전망과 과제

송승환
국가기록원 기록조사위원
경기대 강사

2012년 민주통합당의 대선주자였던 문재인 의원이 공동정부 형태로 안철수 서울대 교수를 포함한 개혁세력 전체를 아우르는 연립정부 구상을 제안함으로써 ‘연립정부’에 대한 토론이 수면 위로 부상한 적이 있었다. 그 제안에 대해 야권 내의 정치그룹 사이에서는 찬반논쟁이 벌어졌다.
야권세력은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총선에서 이명박 정부-새누리당에 맞서기 위해 후보단일화를 주축으로 하는 ‘선거연합’을 추진해 왔다. 그런데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는 정부의 교체와 구성이라는 새로운 문제에 마주치게 된데다 안철수로 대표된 새로운 연합대상이 부상함으로써 후보단일화-선거연합으로는 ‘연합정치’의 내용을 담아낼 수 없게 되었다. 연립정부 이슈는 지난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야권세력이 가동해 온 연합정치를 보다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키려는 요구와 같은 맥락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연립정부란 여러 정치세력들이 집권을 위해 공동으로 정부를 구성하는 것으로 ‘정부연합’, '연합정부’, ‘공동정부’라고도 부른다. 연립정부는 20세기에 들어서 산업화가 가속화되고 사회가 다양화, 복잡화됨에 따라 사회갈등=사회균열(social cleavage)이 다양화, 다원화되는 것을 배경으로 생겨났다.
특히 자본주의 근대사회의 가장 일반적인 사회균열인 계급균열에 더하여 인종(민족), 지역에 따른 균열이 중첩되기도 하고, 1970년대 이후에는 탈물질 사회의 도래에 따라 생태, 성(gender), 세대 등 문화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 균열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사회균열의 기반 위에서 정당체계 역시 좀 더 다양하고 복잡하게 변화하게 되었고, 이들 각각의 사회균열 축을 대변하는 다당제 정당질서가 확산되었다. 이와 함께 선거에서도 다양한 사회집단과 정치세력의 이해를 대표하고 반영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게 되는데, ‘비례대표제’의 실시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런데 이렇게 정당이 다당제질서로 변하고, 그에 따라 의석분포가 각 정당별로 분산되다보니까, 민주적 집권다수파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한 정당의 힘만으로는 안 되고 여러 정당들이 연합해야 하는 문제가 대두되게 되었고, 여기서 연립정부 형태의 권력구조가 발전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도 산업화와 민주화에 따라 사회갈등이 복잡화, 다원화되어왔고, 다당제가 지속적으로 형성되어 왔다. 그런 사회적 배경 하에서 한국에서도 연립정부 현상이 일정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한국에서 연립정부 현상은 따지고 보면 아주 생소한 것이 아니다. 연립정부는 이미 오래 전에 지역주의 타파를 일차적 목적으로 실험되거나 제안된 적이 있었다.
소위 ‘DJP연합’(1997년 10월 합의)이라 불리는 공동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제안된 ‘대연정론’(2005년 가을에 제기)이 그것이다. 그 전에는 3당 합당에 의한 ‘보수대연합’ 형태의 연립정부가 출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연립정부의 실험이나 논의는 제한적으로만 이루어져 왔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은 다당제(多黨制)와 다자간 경쟁체제가 확립되었지만 그에 비례하여 연합정치가 활성화되기보다는 오히려 회피한 면에 많았다. 연립정부 실험이 정권 획득과 유지를 위한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이루어져 온 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연립정부에 대한 공론장(公論場)에서 정치토론은 물론이고 학계에서의 이론적 논의 역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따라서 연립정부가 단순한 집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보다 큰 전략적 위상 속에서 조망되려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해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한국정치의 문제는 무엇이고, 연립정부가 그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구체적으로 어떤 유의미성을 가질 수 있는가? 둘째, 한국에서 연립정부가 활성화되기 위한 현실적 조건은 무엇인가? 셋째, 연립정부는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가?이다.
그동안 연합의 여러 한계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어찌됐든 연합을 구성한 측은 선거에서 승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연합이 유권자들에게 가시적인 효능감을 부여해 줌으로써 선거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연합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폭은 지속적으로 증대되고 넓어져 왔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항은 연합이 계속 굴절되는 했지만 (1)정치엘리트들끼리의 막후협상을 넘어서 유권자들의 동의와 참여 하에서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고, (2)연합의 내용으로 단순히 권력배분만이 아니라 정책적 협약을 강화하는 쪽으로 변화돼 왔음을 보여준다.
특히 2010년 지방선거에서 전개되었던 야권연대의 실험은 한국정치 및 연립정부 실험의 중요한 발전을 보여준다. 그 핵심은 연합정치가 과거와 같은 단순한 합종연횡을 넘어 대중적 참여와 정책에 입각한 정치운동의 한 형태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연합이 이념적·정책적 지향에서의 인접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면서 그 이전에 나타났던 것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지속성 있는 연합이 출현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한국에서 연합정치운동의 새로운 국면이 형성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연합정치-연립정부는 야권연대에 의한 ‘정권교체’라는 당파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서도 중요하지만 연합정치-연립정부가 단순히 보수진영에 맞서기 위한 진영의 무기만은 아니고, 정치선진화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현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한국정치 개혁의 목표는 사회적 공동선에 대한 토론과 합의가 가능하도록 정치를 바꾸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권력추구를 위한 극한적 대립이 반복적으로 재생될 수 있는 유인 구조를 바꿔야 한다.
연합정치-연립정부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정치제도가 개선돼야 한다. 대표적으로 정치균열의 분절성을 완화하기 위해 여러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한국의 현행 정치제도는 다수제적 제도로 설계되어 있는데, 단방제적 성격과 중앙집권적 정부의 구조, 행정부 우위의 구조가 그렇다. 특히 단순다수제 방식에 의거한 국회의원과 대통령의 선출은 양당제도 아니고 다당제도 아닌 모호한 정당체계를 만들어 내고, 연립정부의 실험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만든다. 따라서 승자독식의 권력구조를 완화하여 합의제를 지향하는 쪽으로 바꾸는 제반 정치개혁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연합의 과정이 민주성과 이념적 인접성을 증대할 수 있도록 정치관련법을 개정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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