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반신반의했다. 벌써 오래 전, 이마에 일장기를 동여매고, 동경 시내 어느 기관 옥상엔가를 올라가 시위하다 당대의 일본을 우국하여 할복 자살했던 그 미시마 유키오(하필…!)의 소설을 우리의 신경숙 작가가 표절했다니.
그러나 지난 6월16일 이응준 소설가가 표절이라며 예시해놓은 문장들을 읽는 순간, "아, 이럴 순 없는 거다…"라는 구토에 가까운 불쾌함을 느꼈다. 표절이었다.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는 구절은 지난 며칠 동안 주위 사람들과의 대화 때 농담의 소재가 되었다.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에 나오는 대목,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첫날 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와 신경숙의 작품에 나오는 대목,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첫날 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를 비교해 읽어보며 단박에 두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표절이라는 생각과, 아직 초년기(1994년)의 신경숙이었음을 감안하더라도, 다른 이의 글을 이 정도로밖에 재가공하지 못하는 소화능력의 작가였더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생각보다 일찍(6월17일) 신경숙 작가의 반응이 나왔다. 세련된 정치 감각이 있기 어려운 소설가였기에 출판사를 통한 간접 의사표시 같은 절차는 양해할만 했다. 문제는 내용이었다. "미시마 유키오의 그 작품을 알지도 못하며 읽어본 사실이 없다, 나를 믿어 달라, 앞으로는 표절 시비에 더 이상 대응하지 않을 것이다"는 입장 표명은 당혹 그 자체였다. 독자들의 상식적 판단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었다. 작가와 작가를 옹호한 출판사를 향해 거국적인 분노가 폭발했다. 작가는 마침내 오늘(6월23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 형식을 빌어 무릎을 꿇었다. 한 언론매체를 통한 인터뷰 형식도 다시 문제가 있지만, 작품 활동만 해온 전업 작가였다는 점에서 이해해주고 싶다. 그러나 아마도 평단과 나보다 더 뜨거운 독자들은 다시 정식 사과를 요구하고 나올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녀는 이렇게 스스로 화를 조금씩 조금씩 키워가고 있구나.
신경숙 작가에 대해 아쉬움과 의문이 남는다. 왜 처음(6월17일)부터 좀 더 진솔하지 못했을까? 왜 「우국」을 알지도 못했고 읽지도 않았다고 했을까? 왜 거짓말을 했을까? 왜 숨기려 했을까? 왜 자기 자신에게조차 정직하지 못했을까? 왜 진즉 오늘처럼 사과하고 나오지 못했을까?
오늘「경향신문」의 사과내용은 또 무엇인가? "표절한 게 맞다고 생각한다, 「우국」을 안 읽은 것 같은데, 이제 나도 내 기억을 못 믿겠다. 모든 걸 내려놓겠지만, 절필은 못하겠다."라며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게 되었을까? 「우국」을 읽은 기억이 없다면서 「우국」을 표절한 게 맞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절충주의인가 모순의 변증법인가. 다 내려놓겠다면서 계속 작품 활동을 하겠다는 것은 또 무슨 신앙 고백인가. 이 나라 대표 작가의 초라해져가는 모습, 굴욕적이다. 왜 신경숙은 우리를 그렇게 굴욕감에 휩싸이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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