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일태 전 군수 1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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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

故 김일태 전 군수 1주기

지난 10월2일 가족 친척 지인들 모여 조촐한 추모제

故 김일태 전 군수 1주기 추모제가 지난 10월2일 미망인 임향숙 여사를 비롯한 가족과 친척, 지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열렸다.
고인은 지난해 6·4 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 3선 영암군수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하지만 다른 전임 군수와는 달리 고향 영암을 떠나지 않았으며, 재임 중 자신이 일궈낸 최대 업적 가운데 하나인 氣찬랜드 등을 매일같이 찾아 영암군의 발전을 고민해왔다. 그러던 중 복강 출혈로 전남대병원에 입원, 수술을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지난해 9월14일 향년 6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지난 1944년 영암에서 출생한 고인은 목포북초교와 유달중, 광주기계공고, 광주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제2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과 제2,3대 전라남도교육위원회 위원, 의장 등을 역임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군수에 당선된 이래 재선하며 제39, 40대 영암군수로 민선4, 5기 영암군정을 이끌었다. 유족으로는 부인 임향숙 여사와 준구, 준영, 지수, 지은, 지영씨 등 2남3여가 있다.
비록 1주기여서 이른 감이 있기는 하나, 고인이 민선 4, 5기 영암군정을 맡아 열정적으로 일한 성과물들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함께, 그 발전 방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점점 힘이 실리는 분위기여서 주목된다.
영암군수로 재임하면서 고인이 일궈낸 성과물은 얼른 꼽아도 상당수다. 氣찬랜드, 하정웅미술관, 낭산 김준연 선생 기념관, 상대포 역사공원 등등. 또 '달뜨는 집', '왕인문해학교' 등 복지시책으로 영암군을 전국 최고의 복지행정 지자체 반열에 올렸다. 뿐만 아니라 민선 6기 들어 완공을 앞둔 국민체육센터나 삼호종합문화체육센터도 고인이 생전에 마무리하지 못한 굵직한 현안사업들이다. 삼호읍과 대불국가산업단지에 이뤄진 도심정비와 대규모 투자 사업들 대부분도 고인이 시작해 재임기간 마무리하지 못한 것들이다.
2008년 설립 이래 지금까지 총 1천175건 145억여원의 장학기금 기탁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재)영암군민장학회는 고인이 그야말로 진한 애정을 쏟았던 '걸작'이다. 군수 재임 중 국비를 확보하기 위해 중앙부처를 방문했을 때 만난 영암군 출신 공직자들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져, 영암지역 학생들이 경제적인 문제에 얽매이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 각계요로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자는 뜻에서 만들었다는 장학재단에 고인은 5천여만원을 직접 기탁하기도 했다. 개인기탁자로는 최고액이다. 군수 재임 중 "도와줄 일 없느냐"고 묻는 지인들에게는 "장학기금으로 내달라"고 요청한 일은 잘 알려진 일화다.
고인의 이런 업적에 대해 지역사회 안팎에서는 1주기를 맞아 정당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해를 거듭할수록 쇠락을 거듭하고 있는 영암군 소재지 활성화를 위해서는 '독단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던 고인의 결단력과 추진력이 오히려 절실히 필요한 때라는 지적도 나온다. 고인이 일궈낸 성과물인 氣찬랜드와 가야금산조기념관, 국민체육센터, 공사 착공을 앞둔 국민여가캠핑장, 분양을 앞둔 영암식품농공단지 등을 제대로 활용해 영암읍 지역경제 활성화의 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당연히 이어진다.
특히 고인이 전남대병원에 실려 가기 전까지도 홀로 찾곤 했던 氣찬랜드의 경우 민선6기 출범과 함께 덧씌워졌던 부정적인 이미지가 완전히 벗겨졌을 뿐 아니라, 올 여름에는 군민들 대다수가 "명실 공히 영암군의 대표 관광지"라는 공감대까지 형성된 것 같다. 바꿔 말하자면 영암에 氣찬랜드마저 없었더라면 여름 피서철 전국에서 몰려든 수십만명의 관광객이 영암군을 찾을 리가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더 나아가 고인이 생전에 계획했던 氣찬랜드 사계절 관광지화 전략에 대해 이제는 군이 적극적으로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이기도 했다.
소위 '안티세력'과의 불협화음, 특정업무 추진과정에서의 독단적인 모습 등 고인에 대한 일부 부정적 이미지가 남아 있기는 하나, 이제는 이처럼 그가 남긴 많은 업적들에 대부분 희석되어진 느낌이다. 특히 氣찬랜드를 거쳐 주거변천사 야외전시장, 河미술관, 상대포 역사공원 등에 이르면 재임시절 집무실에 액자로 걸어두고 되새겼던 고인의 삶의 지표이자 정치철학인 '사이후이(死而後已 죽을 때까지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함)의 정신'이 생각난다. 복강 출혈로 수술대에 오르기 전까지도 고인은 氣찬랜드 아니면 상대포에 있었다는 기억에서다.
아울러 두 번이나 군수를 역임한 고인의 빈소가 영암에 마련되지 못했던 지난해의 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1주기인 지금부터는 그의 업적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발전적 계승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춘성 기자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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