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많이 드신다고 다툰 기억밖에 안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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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많이 드신다고 다툰 기억밖에 안나네"

영암읍 송평리 나 금 례씨(93세)

“애기 업고 용칭이재 넘어다녔는디
그놈에 용칭이재 징허게도 높았어”
“빨래 주무를 때는 그 물 잠그고… 아녀 아녀, 그건 여기다 두고…”

“아따~ 할머니 내가 잘 알아서 헐랑께 가만히 계셔…”
툇마루에 앉은 할머니와 집안 청소를 하고 있는 봉사자들 사이에 야단치는 소리, 대꾸하는 소리가 연신 오고 간다.

할머니가 자원봉사자 하는 일에 일일이 간섭 하시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아껴 쓰라”는 것.

일명 ‘480원 할머니’라 불리는 영암읍 송평리 평장마을 나금례(93) 할머니.

할머니 홀로 사시는 집이지만 한 달 전기요금이 ‘480원’ 나온대서 붙은 별명이다. 게다가 한 달 수도요금이 1천300원, 보일러에 기름 2드럼 넣고 6년째 사용하신단다. 빗물 받아 빨래하고 헹굼만 수돗물을 쓰신단다.

할아버지 대신 경제권을 도맡아 집안을 꾸리고 6남매를 키우시느라 평생 근검 절약하고 소탈하신것이 몸에 밴 탓이다.

김해김씨 시중공파 집안 김형태 할아버지는 17년전 작고하셨다. 평생 농사만 지으셨지만 술을 좋아하셨던 할아버지. 술값 많이 들어가는 것이 할머니 가계부에 적잖은 부담이 되셨나보다.

“술 많이 드신다고 다툰 기억밖에 안나네”

나 할머니는 금정면 세류리 안산 산골짜기에서 용칭이재(달봉재-칠성산에서 달봉산을 지나 용흥리로 넘어가는 고개) 넘어 송평리로 시집왔다.

친정 아버님은 왜정때 큰 부자셨다. 당시 면에서 제일 끗발좋은 산림계장을 지내셨다고 한다.

“우리 집이 밤나무도 많이 심었고, 머슴 부리고 소깔 깨나 비고 살았어”

그러한 재력을 지닌 친정인지라 젊었을 적 ‘친정 덕’을 많이 보고 살았다.

“덕 많이 봤제. 논도 세 마지기나 사줬어. 친정집에 얻으러 잘 갔어. 애기 업고 용칭이재 넘어다녔는디 그놈에 용칭이재 징허게도 높았어”

용칭이재는 송평리에서 새벽밥 먹고 길을 나서 샛길로 간다해도 점심나절에 도착하는 먼길이었다. 그 길을 걸어서 친정에 고추며 된장 고추장 얻으러 갔다.

“내가 지금은 조카 심으로 살아. 나 시집옹께 조카가 10살 먹었드만”

나 할머니 집 담을 사이에 두고 이웃에 조카 김진모(80)씨가 할머니를 친어머니 처럼 봉양하며 살고있다. 김진모씨는 군서면장을 9년간이나 지낸 퇴직 공무원. 잔 심부름 다 해주는 조카가 할머니에게는 자식 이상으로 고맙고 든든하다.

“큰 아들 쾌차하는 것이 소원”이라는 나 할머니. 서울 사는 큰 아들(김윤모·72)이 몸이 많이 아프다고 아흔 셋 드신 어머니가 걱정을 하신다.

아직도 젊은이들 처럼 찬물로 목욕하시고 국 한가지만 있어도 식사 잘하신다는 할머니지만 숨이 가쁘고 다리가 아프니 나이는 속일 수 없나 보다.

“솔나무 밑에 안거서 맬겁시 서러워서 눈물이나 짓제… 먼 낙이 있겄어”

이젠 자식들마저 60대, 70대 노인이 되어가니 망백(望百 : 91세)을 넘긴 할머니에게 세월의 덧없음이야 서러운 눈물로 흐르는듯 싶다.

/변중섭 기자




변중섭 기자 jusb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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