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는 누비 직령포(直領袍) 3점, 저고리 2점, 모자 1점, 속곳 1점, 누비 너른바지 1점, 누비버선 1점, 부들신 1점이며, 주장품은 목제구슬 1점(30顆) 삼껍질로 만든 제옹 5점이다.
김함(1568~1598)의 본관은 김해(金海)로 영암에서 김극희(金克禧)의 아들로 태어나 선조 21년(1588)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에 이르렀고, 임진왜란 때에는 부친과 함께 이순신장군 휘하로 들어가 참전했다.
정유재란 때에는 한산도 해전에서 부친이 순절하자, 부친의 시신을 임시로 안치한 뒤 적진에 들어가 싸우다 역시 순절했다.
그 후 그의 시신을 거두지 못한 문중에서는 초혼장(招魂葬)을 하고 그의 의복으로 장례를 치렀다. 묘비에는 ‘宣武功臣宣傳官金公衣履藏碑(선무공신선전관김공의이장비)라는 비명이 기록되어 있다.
이 뮤물들은 당시 복식연구와 또한 장례풍속에 관한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현재 단국대학교 석주선 기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영암군청 문화관광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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