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년전 왕인 뱃길을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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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전 왕인 뱃길을 따라서

이진 前) 영암군 신북면장 前) 전라남도 노인복지과장 前) 완도부군수
우리고장 구림리 성기동에서 출생하신 왕인박사께서는 지금부터 1,600여년전 일본으로 건너가 응신천황의 태자에게 학문을 가르치시고 일본 아스카문화를 창시하셨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왕인박사께서 어떠한 항로를 거쳐 일본으로 가시게 되었는지는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았고 이에 대한 연구도 미흡한 실정이었다. 따라서 영암군에서는 2001년 왕인문화축제 기획행사의 일환으로 일본에 우리문화가 전파된 한·일고대항로 탐사를 기획하게 되었고 필자는 당시 영암군 문화공보과장으로 재직하면서 한·일고대항로탐사 행사를 총괄 기획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고대항로탐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한국고대항해탐혐연구소' 채바다 소장을 탐사대장으로한 8명의 민관합동 탐사단을 구성하고 탐사에 사용될 배는 옛날 우리 선조들이 이용하던 전통 원시배인 '때배'로 의견견을 모아 '떼배'제작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김천년(제주도 남제주군)씨에게 의뢰하여 2톤 규모의 탐사선을 건조하고 '왕인박사호'로 명명하였다.
성공적인 탐사를 위해 탐사단은 사전에 조류와 해류의 흐름 등 탐사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수차례 일본 현지를 답사하는 등 철저한 준비작업을 진행했다.
그 뿐만 아니라 고대항로 탐사선은 아무런 첨단항해장비도 없는 원시 무동력선으로 거친 현해탄을 건너야 하는 매우 위험한 항해였다 따라서 탐사선의 안전을 지키는 호위선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되어 일본 항해경험이 있는 부산선적 155톤급 '연화호'를 호위선박으로 임대계약하여 투입하였다.
이러한 모든 절차를 마치고 마침내 2001년 4월 9일 '왕인박사호'는 1,500여명의 인파가 몰려든 가운데 영암 대불항에서 성대한 출항식을 갖고 1,600년만에 한일 고대항로 탐사의 대장정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런 동력도 없이 오직 바람과 조류에만 의지하여 현해탄을 건너야 하는 '왕인박사호'의 뱃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첫번째 고비는 조류가 거세기로 널리 알려진 진도 울돌목 통과였다. 많은 사람들이 울돌목 조류를 무동력선으로 통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비관적인 의견을 내놓았지만 왕인박사호는 옛 선조들이 일정한 시간마다 변하는 조류의 방향과 바람을 이용하는 고대항해기술을 응용하여 무사히 어려운 울돌목을 통과할 수 있었다.
두번째 위기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졌다. 내해를 벗어나 현해탄 망망대해에 들어섰는데 '왕인박사호'를 호위해야할 호위선 '연화호'의 방향타가 고장이 나고 말았다. 호위선이 방향을 잃고 무전교신마저 제대로 되지 않아 구조요청도 할 수 없어 탐사대원 모두가 생사의 갈림길에 직면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선원들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고장난 방향타가 수리 되고 교신이 연결되어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거친 '왕인박사호'는 마침내 2001년 4월 9일 한국 대불항을 출항한지 8일, 공식 항해기록 106시간만에 뱃길로 380km에 이르는 현해탄의 거친 파고를 넘어 4월 16일 일본 사가현 가라쓰항에 정확하게 도착하였다.
'왕인박사호'가 도착한 가라쓰항에는 일본의 요미우리, 아사히, 서일본신문, NHK 등에서 파견된 50여명의 신문, 방송 취재단이 몰려들어 헬기를 띄우는 등 뜨거운 취재경쟁을 벌였고 손에 손에 태극기와 일장기를 든 '오오시마' 유치원생들, '어서오세요'라는 한글 현수막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들고 나온 '가라쓰해상기술고등학교' 학생들, '가라쓰항진흥회원', 한·일 민간교류단체인 '현해인클럽회원', '재일거류민단사가현본부회원' 등 1,000여명이 운집하여 탐사단을 열렬히 환영해주었다.
환영식을 마친 탐사단 일행은 왕인묘가 소재한 히라카타시로 출발하여 히라카타시 왕인총수호회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왕인묘 참배를 마쳤다.
왕인박사묘 참배를 마치자 히라카타 시장님이 탐사단 일행에게 특별초청만찬을 열어주시겠다는 연락이 왔다. 일본 관례상 70만 인구의 시장이 예정에 없는 특별만찬 자리를 열어 주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히라카타 시장님의 만찬을 끝으로 한·일고대항로 탐사는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이번 탐사를 통해 우리는 왕인박사의 고대 도일 항로를 추적하여 실증적으로 보여줌으로서 한국과 일본의 문화교류 현장을 확인하고 영암이 고대문화의 중심이었다는 것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아울러 국경을 초월하여 우리 탐사단 일행을 뜨겁게 환영해주고 크나큰 관심을 보여준 일본국민들과 언론의 취재열기를 보면서 왕인박사의 높으신 학문세계와 그 분이 일본문화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는 이처럼 훌륭하신 왕인박사의 후예들로서 새해를 맞아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시대적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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