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교육 문화의 구심, 살아 있는 도서관을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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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영암 교육 문화의 구심, 살아 있는 도서관을 갈망한다

김기천 영암군의원(정의당·학산미암서호군서)
나는 유년의 절반을 외가인 미암 영선마을에서 보냈다. 유천동 집에서 영선까지 족히 10리가 넘는 시골길을 참 바지런하게 오갔다. 먼지와 뙤약볕을 길동무 삼았지만 그 길은 고달프지 않았다. 그곳에 책이 있었다. 큼큼한 흙냄새와 아궁이 그을음이 눌러붙은 삼촌들의 방에서 나는 처음 푸쉬킨을 알았고 황순원과 톨스토이를 만났다. 엄한 할아버지와 과묵한 삼촌들 틈에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울음을 삼켜야 했지만 사랑방 한켠을 차지한 먼지 쌓인 책보따리 하나를 풀어헤치면 그만이었다. 그마저 없던 집에서는 흙벽에 초벌로 바른 동아며 조선 지면을 샅샅이 훑는 것으로 갈증을 채우곤 했다.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으나 김추자, 마제스틱, 이명래 고약.... 같은 단어는 지금도 뇌리에 또렷하다.
예나 지금이나 팽상 촌놈인 나같은 사람에게는 허기를 달랠 밥에 대한 욕구만큼이나 책에 대한, 문화예술을 향한 열망도 갸륵했다. 번듯한 도서관 언저리조차 기웃거려볼 여유 없이 훌쩍 청년이 돼버린 나는 그 간절한 바람을 광주와 원주교도소 0.7평 독방에서 비로소 해원했다. 몸은 갇히고 모든 기회를 잃어버린 그 암흑의 좁은 방에서 인생의 개화기를 맞았으니 삶이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고 그리운 모든 이들에게 편지를 써보냈다. 시를 암송하고 손으로 쥐면 바스러질 것 같은 창살밖 풍경을 스케치하다 그리움이 사무치면 달밤에 대고 노래를 불렀다. 덕분에 시간은 바삐 흘렀고 내 영혼까지 차마 가두지 못한 그 세월 덕분에 참으로 행복했다.
때마침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전남교육청이 기존의 낡고 불편한 공공도서관을 대신할 새 도서관을 짓겠다는 구상을 밝힌 것이다. 2천평의 부지에 1180평의 건축면적, 570석 규모로 현재의 두 배 수준이다. 2023년 개관 목표로 170억을 들여 짓게 된다. 그런데 규모보다 주목할 부분은 도서관의 공간구성과 활용계획이다. 자료실과 열람실 위주의 평면적, 정적인 도서관이 아니라 시대변화와 이용자의 요구를 반영해 입체적, 활동적, 생활밀착형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청사진이다. 예를 들면 열람실과 푸드카페의 공존, 야외 독서캠핑장, 야외영화관, 옥상에서 책과 하루를 보내는 하늘책방, 각종 공연으로 시끌벅적한 소극장이 도서관 안에 있다고 상상해보라. 꿈이 아니다. 이미 전국의 많은 지역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도서관의 모습이다.
그런데 ‘촌놈들’가슴을 뛰게 하는 이 일이 정작 영암 군민들 사이에서는 잠잠하다. 2019년 후반기에 처음으로 도서관 이전과 관련한 컨설팅과 학부모 설문조사가 이뤄진 이래 후속 논의가 교육청과 전남도, 영암군 사이에 진행되었는데도 대중적 관심사로 떠오르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간명하다. 몇몇 정치인과 행정관료가 의사결정을 독점하고 있는 탓이다. 학생과 학부모, 지역주민의 요구와 참여를 배제한 논의과정은 도서관의 위상과 활용방안에 대한 활발한 의견표출 대신 영암읍 안이냐 밖이냐를 다투는 형국으로 변질되어버렸다. 이제 다시 ‘영암군민이 원하는 도서관’을 교실에서, 마을에서, 식탁에서 토론해야 한다. 그 물꼬를 트기 위해 이 글을 쓰는 셈이다.
무엇보다 영암군민 모두의 도서관이어야 한다. 특히 교육 문화적 사각지대에 놓인 작은 면단위 주민들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영암읍과 삼호읍, 올해 착공하는 학산면을 뺀 나머지 지역은 도서관이 없다. 도서관만 아니라 변변한 문화공간조차 전무한 것이 불편한 진실 아닌가? 큰맘먹어야 도서관 한번 찾는 사람들을 위해 접근성이 좋고 주차, 충전 등 편의시설이 충분해야 한다.
둘째, 학부모와 학생이 중심이되 평생 도서관 근처에 가보지도 못한 일반 지역민을 보듬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르신을 위한 책 읽어주기, 세대공감 체험프로그램, 문화자산 전승교육 같은 교육장 역할도 맡아야 한다.
셋째, 주변환경, 문화인프라와 연계가 가능한 공간이어야 한다. 도서관에 가는 날이 문화향유의 감흥으로 충만하고 넉넉한 쉼과 충전을 통해 건강한 일상을 회복한 날이 된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넷째, 지역민의 참여와 제안으로 지어지는 집이어야 하겠다. 도서관 이름부터 공모하고 공간구성과 활용방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필요하다. 더디더라도 이견을 조정하고 충분하게 설명하는 섬세한 소통이 절실하다.
다섯째, 도서관이 영암역사관으로 기능하면 좋겠다. 한참 발굴과 연구가 진행중인 고대 마한의 역사부터 조선 중기 의병, 한말에서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항일구국운동, 해방전후 건국운동, 한국전쟁의 아픈 상처, 4·19, 5·18, 6·10, 촛불항쟁으로 이어지는 영암의 민주화운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와 VR체험관을 적극 개발해야 한다.
올해부터 영암읍은 큰 변화의 시대를 맞게 된다. 도시재생, 달맞이공원, 공무원 임대아파트와 청년소통센터, 작은 영화관, 남풍리 고령자 행복주택, 교동지구 도시개발, 그리고 암벽경기장에서 기찬랜드로 연결하는 월출산 F4 스테이션까지 완성하면 영암읍의 외연이 크게 확장되고 정주환경이 진화한다. 이에 더해 떠들썩한 교육복합문화센터 역할을 할 도서관이 자리잡는 것이다. 영암읍민은 맏형이나 다름없다. 군민 모두의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킬 이 도서관 신축에 맏형의 통근 포용력을 발휘해주실 줄로 믿는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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