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문화재연구원이 2009년 8월 내놓은 시굴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영암읍성은 고려 말 축조되기 시작해 조선 초기 완성된 읍치성(邑治城)이다. 둘레가 2.01㎞에 해자 흔적이 있고, 객사와 동헌 등 큰 건물이 무려 15동이나 있었다 한다. 당시 전라도 육군본부 격인 강진 병영성보다 두 배 가까이나 큰 규모였다니 전라도 최대 규모의 읍성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1555년 5월 을묘왜변이 일어났을 때에는 영암 출신의 최초의 의병장이었던 양달사 장군이 대첩(大捷)을 거두며 성내의 수많은 백성과 병사들의 목숨을 구한 곳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소설가 이영현씨는 영암읍성에 대해 "반만년 영암군 역사상 최초로 군민들의 피땀으로 대를 이어 조성한 최고의 걸작"이라고까지 평가한다. 이런 문화재가 일제와 한국전쟁, 새마을운동 등을 거치며 파괴되어 도로 경계석과 주춧돌과 담장석 등으로 버려져 있으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영암읍성 복원노력은 꾸준히 있어왔다. 최근엔 영암읍성보존회가 창립되고, 군은 사상 처음으로 영암읍성 보존 및 활용방안을 찾기 위한 연구용역 예산 1천800만원을 편성했다. 작은 움직임이나 역사와 문화가 축적된 독립적 역사공간인 영암읍성을 되찾으려는 시도여서 의미는 크다. <영암군민신문>은 이에 움직임을 더 키워 장기적으로 영암읍성을 복원하기 위한 단계적 계획을 세울 것을 제안했다. 광주전남연구원 김만호 연구위원의 논문 '광주전남 읍성(邑城)의 현황과 활용방안'에 의하면 영암읍성의 복원을 위한 첫 단계는 기초연구, 두 번째 단계는 '표시하고 기억하기', 세 번째 단계는 실제 읍성 복원이다. 대숲 속에 버려진 성돌들을 찾아 차근차근 읍성을 다시 쌓다보면 언젠가 본모습을 되찾을 것이다. 영암의 역사와 군민 자존도 되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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