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거꾸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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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거꾸로 보기

이진 前) 영암군 신북면장 前) 전라남도 노인복지과장 前) 완도부군수
삼국지(三國志)는 수호전(水滸傳), 서유기(西遊記), 금병매(金甁梅)와 함께 중국의 4대기서(四大奇書)의 하나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널리 읽히고 있는 문학작품이다. 삼국지의 문학적 영향력은 영국의 세익스피어 작품과 비교 되고 있다.
우리나라 성인, 중·고생,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독서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기억에 남는 도서 1,2순위가 삼국지다. 책을 읽는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 삼국지를 한번도 읽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되고, 읽지 않았다 하더라도 영화나 드라마, 만화를 통해 한번쯤은 접해 보았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인지 우리 일상생활에는 삼국지에 나오는 이야기가 많이 인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삼고초려 인재 영입',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인적쇄신', '박근혜를 둘러싼 십상시', '국회의원 출사표를 던졌다' 등이다.
삼국지는 서기 183년 후한 말 황건적의 난으로 인한 군웅할거 시대부터 오(吳)나라가 패망한 282년까지 약 100년간에 벌어진 중국 위(魏), 촉(蜀), 오(吳) 세 나라의 영웅들이 천하 패권을 둘러싸고 힘과 지혜의 다툼을 벌이는 이야기다. 한번 책을 들면 놓을 수 없도록 흥미진진하게 펼쳐져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삼국지는 두 가지가 있다. 3세기 서진시대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와 14세기 명나라 시대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가 있는데 '정사 삼국지'는 정사라는 표현 그대로 정확한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고, '삼국지 연의'는 '정사 삼국지'를 토대로 쓴 가상의 이야기다. 따라서 '삼국지 연의'는 역사의 굵은 흐름은 같지만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고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위해 사실을 바탕으로 민담이나 설화, 작가의 상상력을 보태서 재미나게 엮은 '역사소설'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읽고 있는 삼국지는 '삼국지 연의'다.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는 위(魏)나라를 정통 왕조로, 나관중이 쓴 '삼국지 연의'는 촉나라를 정통왕조로 보고 기술되었기 때문에,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한 평가가 서로 다르게 기술되어 있기도 하다. 삼국지를 읽다가 사람들이 책을 세 번 던져버린다고 하는데, 촉나라의 유비, 관우, 제갈공명이 죽었을 때라고 한다. '삼국지 연의'가 촉나라를 정통왕조로 기술되었기 때문에 촉나라의 중요한 인물들이 죽었을 때 독자들이 탄식하게 되는 것 같다.
'삼국지 연의'는 일곱푼이 진실이고 세푼이 허구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허구라고 말해지는 사실을 몇가지 살펴보면 제갈공명이 남만지방을 정벌하기 위헤 군대를 일으켜 탄복할만한 계책으로 남만왕 맹획을 칠종칠금(七縱七擒 일곱번 잡았다가 일곱번 풀어줌)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는 제갈공명이 남쪽을 정벌했다는 한구절만 전해지고 있다. 남만정벌시 제갈공명의 눈부신 활약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썼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적벽대전에서 제갈공명이 하늘에 고사를 지내 동남풍을 일으켜 조조대군을 화공으로 공격했다고 하는데, 이는 해마다 양자강 일대에 무역풍이 부는 것을 제갈공명이 관찰해 두었다가 전술에 활용한 것으로 추정됨에도 작가는 제갈공명을 비 바람을 부르는 신출귀몰하는 초능력자로 만든 것이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맞아 들이기 위해 삼고초려를 했다고 하는 것도 사실은 제갈공명이 유비를 먼저 찾아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당시 시대적 상황이 위나라 조조는 이미 천하의 인재를 영입하고 국가기반을 구축한 상태라서 젊은 제갈공명이 설 자리를 찾기 어렵고, 손권의 오나라에는 이미 친형 제갈근이 있어서 형제간에 재주를 겨룰 수 없는 상황에서 재갈공명이 인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유비를 찾아가 자신의 재능을 보이자 유비가 이를 인정하여 영입했는데, 작가가 삼고초려라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지만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의 탁월한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유년시절과 장년시절에 삼국지를 2∼3번 읽은 기억이 있고, 최근에 다시 한번 '이문열 삼국지(10권)'를 읽었다. 노년에 읽은 삼국지는 젊은 시절에 읽은 것과는 또 다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삼국이 천하를 제패하기 위해 다투던 시절 인구 규모는 위나라가 429만, 오나라가 250만, 촉나라가 108만명에 불과했는데, 다소 과장되기는 했지만 적벽대전에 참여한 위나라 군대가 100만대군이었다고 한다. 위나라 전체 인구 중 부녀자와 어린아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구가 전쟁에 참여를 했다고 보아야 하고, 이러한 크고 작은 전쟁은 100년 동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벌어졌다. 천하를 차지하기 위한 군주들의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민초들이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잃어야 했는지, 그 죽음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 참혹한 전쟁을 겪은 민중들의 삶이 어떠 했을지 상상만 하기에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백성들의 삶을 평화롭게 해야 하는 것인데, 정의란 무엇인지 역사에게 물어보고 싶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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