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섭 영암읍노인회장 |
등산객들이 산을 오를 때마다 느낀 점은 평야지대에 솟아나 해발 표고가 불과 809m에 불과하지만 오르면 오를수록 결코 낮은 산이 아니다.
그럼 월출산 이야기가 나왔으니 사자봉부터 자세히 열거해 보면 높이 408m인 사자봉을 시작으로 정상인 천황봉, 도갑봉, 주지봉까지 동쪽에서 서쪽으로 하나의 작은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남쪽은 강진, 북쪽은 영암군 영역으로 북쪽은 웅장하고 남쪽은 섬세하고 순탄한 산세를 보여 여성스러운 면모를 보인다. 또한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월출산의 능선은 마치 바위의 전시장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바위가 많다.
또 하나 월출산에는 저절로 움직이는 세 개의 바위가 있었는데 그 하나는 운무봉에 있고 나머지 둘은 도갑과 용암아래에 있어 이 동석은 한 사람이 흔들거나 열 사람이 흔들어도 똑같이 움직였다. 이 바위로 인해 영암에 큰 사람이 난다하여 이를 시기한 중국 사람이 이 바위 세 개를 모두 산 아래로 떨어트렸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스스로 월출산에 다시 올라갔다고 하여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월출산의 제2봉인 구정봉 아래에는 동석이라 새겨진 바위, 큰바위얼굴이 있다.
그리고 총면적 31㎢의 월출산은 1988년 6월11일 도립공원에서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어 전국적으로 산악인들에게 널리 알려졌고 한번 이상 산을 오르면 두 번 이상 찾아온다.
월출산은 영호남지방 사람들의 표상이요, 먼 옛날 자신들의 뿌리를 되찾은 마음속의 고향이다. 월출산은 들머리로 산을 오르든지 간에 능선에 서면 온통 바위천지를 이루는데 마치 열병식을 하는 병사들처럼 늘어선 바위 군상을 보고 어느 등산객은 “꽃보다 바위가 더 많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월출산의 흙과 풀은 성주상의 과일처럼 조각조각 쌓여있는 바위들을 이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접속사처럼 보이고 신발에 흙 한줌 묻히지 않고도 등산할 수 있다고 표현한다. 월출산의 산해의 들머리는 크게 두 곳으로 나뉘는데 동쪽은 천황사, 서쪽은 도갑사로, 도갑사 들머리로 오를 경우 구정봉이 가깝고, 천황사 들머리로 오를 경우 천황봉이 가까운데, 일반적으로 두 개의 산행코스 중 일반인들에게 인기 있는 곳은 천황사에서 구름다리 쪽으로 오르는 코스이다.
최근에 만든 산성재와 대동제(국보144호 마애여래좌상) 코스도 있다.
천황사는 영암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월출산의 최고봉인 천황봉을 빨리 오를 수 있고 천황사쪽으로 바람골의 바위성채는 전남 산악인들의 모임으로 많은 등산코스가 개척되어 있는 암벽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천황사를 들머리로 해서 50분간 사자봉에 오르면 사자봉과 연봉으로 연결하는 구름다리사이로 새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지나가고 높이 200m 되는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도갑사로 들어가는 들머리에는 동구림 마을에서 월출산의 신령스러운 정기를 받아 태어났다는 왕인박사의 탄생지가 바로 이 동구림인데 백제시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황실에 천자문을 비롯한 학문을 전했다는 왕인박사가 영암고을에 태어난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또한 도갑사 서쪽으로 자리 잡은 주지봉과 죽순봉 산자락에 왕인박사 자취가 남아있고 책을 보관했다는 책굴과 문산재 베틀굴, 왕인석상이 있다.
그리고 천황봉을 중심으로 마을앞들에서는 한눈에 볼 수 있는 관광명소는 좌측은 달구봉 춘양이바위, 구절폭포(칠지폭포), 위에 미륵과 절터 중앙에는 사자1,2봉 연봉으로 구름다리, 밑으로는 천황사, 우로는 6형제바위(형제봉, 장구봉), 광암터가 있다. 월출산 관광자원은 천황사지구다. 그래서 월출산 소금강산이라 했다.
이렇듯 월출산은 해발표고만으로는 어림짐작 할 수 없는 문화적 역사적 깊이가 숨겨진 명산이고, 영암인들의 신앙의 근원이며 문화의 발생지이다. 해발표고만으로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월출산의 높이를 가슴 속에 재정립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고 월출산과 월출산의 바위문화를 새로이 가슴으로 인식한 산악인의 눈에는 월출산 자락 어디서든 피어나는 동백꽃이 더욱 붉게 보일 것이며 “달이 뜬다~달이 뜬다~”로 시작하는 영암 아리랑도 어디에서든 영암의 자랑으로 내세워도 낯설지 않을 것이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