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각사의 도산학당과 담클럽이 주관하여 버스1대로 경남 하동군 약양면 평사리에 있는 최참판댁 사랑채에서 하계 종강(終講)을 하고 돌아왔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평사리 최참판댁은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土地)의 무대이다.
토지는 동학혁명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근세 한국에 이르는 격동기를 통하여 민초들의 애환을 그림으로써 역사와 문학이 함께 어울어지는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는 장편소설이다.
비록 한 이야기꾼의 픽션에 불과하지만 한때 이 지역에 살았던 조부자의 실화를 담고 있는데다 지리산과 섬진강이 배산임수로 만나는 풍수 지리적 천하 명당 터여서 최참판댁을 찾는 이들이 날로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토지’가 갖는 예술적 감동 때문이 아닌가 한다.
펄벅의 ‘대지’가 서구인들의 가슴을 흔들었다고 한다면 박경리의 ‘토지’ 역시 우리들의 가슴속에서 오래도록 각인되었다고 할 것이다.
필자는 인생의 즐거움 가운데 최상을 꼽으라 한다면 깨달음의 법열(法悅)을 들겠지만 다음을 말하라 한다면 누가 뭐래도 여행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여행은 작설차와 같아서 여럿이 행하는 것보다 둘만의 동행이 좋고 둘보다는 혼자 떠나는 여행이 제호(醍?)맛에 버금간다고나 할까?
안개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우리는 하동의 평사리에서 서희와 길상이의 연정을 차향처럼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구나 삶의 괴로움과 아픔과 눈물이 없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참고 살아야 한다는 인생의 명분 앞에서 한번쯤 용기를 내어 괜찮은 산사(山寺)를 찾고져 한다면 화엄사·쌍계사를 거쳐 반드시 악양의 최참판댁 사랑채 툇마루에 앉아서 섬진강을 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자신의 인생이 저만큼 내려앉아 흐르고 있슴을 보게 되리라
그리고 그 마을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장터국수와 보리밥도 별미이고 만약 때를 맞출 수만 있다면 음력 열나흘 화개장터나 섬진강변에서 지리산 가수 고명숙(가릉빈가)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달빛음악회의 풍류를 즐기는 것도 커다란 행운일 것이다.
삶의 잣대나 저울은 내가 만든다. 장미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나무에는 가시가 둘이듯 어차피 각오한 인생, 바람 부는 대로, 물 흐르는 대로, 불이 타는 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내 맡겨 보는 것도 그 다지 나쁘지 않다.
요즘 너도 나도 주식투자 열풍이 일고 있지만 그것은 하는 사람이나 하게 내버려 두고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야 한다. 톱질도 나뭇결 따라 하면 힘이 덜 들고 디딜방아도 호흡 따라 하면 땀이 덜 나는 법,
내 인생은 내 소질 따라 진로를 정함이 옳다. 8천미터 이상 높은 산을 16좌나 오른 엄홍길이가 “나는 전생에 아마 산이었나 보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산악인이 산을 오르는 일도 우연이 아니다.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전도연, PGA 6관왕 최경주, LPGA의 최연소 명인의 전당에 오른 박세리, 피겨스케이팅의 신데렐라 김연아, 수영계의 박태환, 축구로 거부가 된 박지성, 이들은 모두 한결같이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쥔 자랑스러운 한국인들이다.
특히 최근에 보도된 자신의 어머니의 유산 400억 땅을 흔쾌히 연세대에 기증한 익명의 여성 독지가, 그녀는 얼마나 가슴이 뿌듯하고 행복할 것인가?
모두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전생에 뿌리내린 싹이 금생에 꽃 피고 열매를 맺은 것이다. 얼굴은 마음의 뜨락이다. 피부가 곱고 얼굴이 예쁜 것도 모두가 용심(用心)에서 나온 것이다.
한 생각이 만년을 가는 법이니 좋은 생각 감추었다가 어디에 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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