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제회의 화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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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제회의 화합

월우스님
도갑사 주지
신묘년(辛卯年)이 가고, 임진년(壬辰年) 새해가 밝았다. 해마다 이맘때면 뿌듯함보다 아쉬움이 크다. 올 한해 뭐 하나 변변히 이룬 게 없다. 의욕만 앞섰지 행실이 받쳐주질 못했다. ‘작복(作福)’을 강조한 조사(祖師)들의 말씀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나와의 약속이든, 남과의 약속이든 말이 앞서면 후회가 남는다. 작은 것 하나라도 정성을 다해 매듭을 짓는 게 중요하다. 마지막 순간까지 후회하며 사는 것, 그것이 범부(凡夫)의 인생 아닐까 싶다.
올해는 용의 해다. 특히 60년 만에 찾아오는 ‘흑룡(黑龍)의 해’라고 해서 이를 앞세운 업계의 마케팅과 상술이 벌써부터 요란하다. 용의 해는 12년을 주기로 반복되지만 그중에서도 임진년은 60년에 한 번씩 돌아온다. 주역에서 말하는 오행(五行)으로 따져 10간(干) 중 임(壬)은 수(水)에 해당하고, 색깔로는 검은색이다. 그래서 임진년은 ‘블랙 드래곤’, 즉 흑룡의 해가 된다.
8천년의 용 문화는 중국 민간에 심원한 영향을 주어 부지기수의 민족 풍속과 명절이 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중국 용 문화 중에서 용은 하늘과 통하는 신의 짐승일 뿐만 아니라 행운을 갖다 주는 길(吉) 스러운 짐승으로 여겨진다. 고대 사람들이 볼 때 용은 천지와 소통할 수 있고 하늘 혹은 신을 대표해 사람을 보호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용을 길상과 행복의 상징이라 생각한다. 고대 통치자들은 심지어 용의 출현을 국태민안의 상징으로 여기기도 했다.
중국에서 음력 2월 초이틀은 ‘용대두(龍擡頭)’로서 전문적인 용의 명절이다. 민간에서는 1년간 칩복했던 용이 이날이면 머리를 들어 활동을 시작하면서 우수(雨水)가 많아진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날에 먹는 음식 또한 용의 몸에서 떨어진 것이라 여겨 면은 용의 수염, 전은 용의 비늘, 물만두는 용의 귀 등으로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흑룡의 해’를 맞이해 용을 특히 좋아하는 중국에서 출산 붐과 더불어 북경과 상해의 거리와 상점에는 붉은색의 용(赤龍)들이 화려하게 장식을 하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같은 동남아권인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쥐(子)부터 돼지(亥)까지 12지(支)에 해당하는 열두 가지 짐승 중 용(辰)은 유일하게 현실에 없는 상상 속 동물이다. 중국 위나라의 장읍이 지은 광아(廣雅)란 책을 보면 용은 아홉 가지 짐승을 부분 조합한 모습을 하고 있다. 낙타의 머리, 사슴의 뿔, 토끼의 눈, 뱀의 목덜미, 소의 귀, 매의 발톱, 호랑이의 발을 갖고 있다. 하늘과 땅, 물속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용은 조화무쌍한 변화를 상징한다. 그래서 용의 해에는 유난히 변화가 많다고 한다.
특히 흑룡의 해인 임진년에는 역사적으로 큰 변고가 많았다. 420년 전이었던 1592년에는 임진왜란이 있었고, 60년 전인 1952년에는 6·25전쟁이 한창이었다. 밑도 끝도 없이 2012년 종말론도 떠돌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올 한 해 한반도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게다가 총선과 대선까지 예정돼 있다.
음력으로 3월이 한 번 더 있는 윤달인 3월은 진월(辰月)이므로 용의 해에 용의 달까지 겹치는 셈이어서 ‘쌍룡제회(雙龍際會)’의 운세가 된다. 그동안 미뤄왔던 대사를 조화롭게 처리하기에 오히려 좋은 기회라는 것이다.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 한 해지만 길흉과 화복(禍福)은 우리가 하기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신앙의 힘이 사람을 바꿔놓을 수 있다. 때론 시련 앞에서, 때론 신 앞에서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DNA가 명령한 자리로 원위치 되는 건 시간문제다. 누렁이와 요크셔테리어가 결국 다를 바 없는 개이듯, 그러한 인간의 속성은 동서고금을 구별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속담에 이런 게 있다. ‘밥을 달라고 기도해서 밥을 얻으면 신은 잊는다.’ 이것은 그대로 서양 속담으로 치환될 수 있다. ‘위험이 지나가면 신은 잊혀 진다’.
어려울 때 일수록 돌아가란 말처럼 유마거사의 대승적 지혜가 요구되는 해가 아닌가 생각된다.
재가불자인 유마거사는 소승적 마인드를 버리지 못한 불제자들을 각성시킨다는 것이다.
어느 날 꾀병을 앓는다. 그러자 부처님이 십대제자들에게 문병을 갈 것을 권한다. 아무도 선뜻 나서려 하지 않았다. 이전에 유마거사에게 한번 크게 곤욕을 치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문수보살이 가기로 했다.
‘유마경’은 유마와 문수의 절묘한 문답행진이 뼈대를 이룬다. 대개 문수가 질문하고 유마가 답변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 문수보살은 대승의 깊은 교리인 불이(不二)법문을 깨닫게 된다. 또 유마가 본래 병이 없어도 중생이 병을 앓으면 보살도 병을 앓는다고 했다. 중생과 보살이 동심일체가 된 경지를 보여준 것이다.
우리 모두의 소원을 성취하는 쌍룡제회의 대운(大運)이 충만하길 기원해본다.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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