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를 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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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를 먹으면서

정찬열 군서면 도장리 출신미국 영암홍보대사

아내가 군고구마를 내왔다. 마켓에 한국산이 보이기에 사왔다고 한다. 입에 척 달라붙는 맛이 전에 많이도 먹어 봤던 바로 그 맛이다.
7남매 장남인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어머니를 도와 부엌에서 불을 때곤 했다.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때면서 부지깽이로 부삽을 두드리며 구구단을 외웠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던 때는 장단을 맞춰가며 천자문을 외웠다. 불똥이 튀어 바지에 구멍을 내기도 했지만 공부하는 모습이 기특했던지, 어머니는 밥 위에 찐 고구마를 꺼내 나를 먼저 먹이곤 했다. 밥풀이 묻은 고구마를 후후 불어가며 먹었다. 그 때의 그 맛이라니.
갈퀴나무는 타고 남은 재도 불땀이 좋아 고구마를 구워먹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때로 시커멓게 태워버리기도 했지만 군고구마는 찐고구마와는 또 다른 맛이었다.
중학을 졸업한 후 농사를 지었다. 설을 쇤 다음 딸막딸막 고구마 농사를 시작했다. 커다란 항아리에 황토와 거름을 섞은 다음 씨고구마를 묻었다. 얼 새라 방 윗목에 두어 싹을 틔웠다. 날이 풀리면 싹이 튼 씨고구마를 텃밭에 옮겨 심어 순을 길렀다.
보리밭이 푸른 물결로 출렁일 무렵이면, 고구마 넝쿨도 제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자랐다. 보리타작이 끝나갈 즈음 감자나 밀 등도 얼추 수확이 끝났다. 빈 밭을 쟁기로 갈아엎어 두둑을 만들었다. 비가 올 성 싶은 날, 때로는 비를 맞으며 고구마 순을 잘라 두둑에 심었다. 순이 뿌리를 내려야 했다. 어느 해는, 물지게로 물을 날라 그 많던 고구마 순에 일일이 물을 주기도 했다.
가을이 오면 곳간이 그득했다. 수수, 콩 등, 밭에서 수확한 곡물은 올망졸망 광 구석구석을 차지했다. 고구마는 얼지 않도록 방에 저장했다. 수수대를 엮어 방구석에 둥그렇게 어리통을 만들어 저장했다. 그리고도 고구마가 넘쳐났다.
마루 밑에 고구마 굴을 팠다. 내 키보다 훨씬 깊게, 장정 몇은 누울 수 있는 넓은 굴을 만들었다. 굴은 고구마를 신선하게 저장할 수 있어서 이듬해 늦은 봄까지 사근사근한 고구마를 먹었다. 여름철에는 고구마굴이 텅 비었다. 그런데 굴이 뜻밖의 일에 요긴하게 쓰였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어느 날, 이장 집으로 배달된 ‘농원’잡지에서 고등학교졸업자격 검정고시 준비 통신강좌 광고를 보았다. 책을 주문했다. 표지가 밤색으로 된 12권짜리 한 질이었다.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저녁에 공부를 했다. 그렇지만 친구들이 찾아오면 함께 어울려야만 했다. 고구마 굴에 들어가 책을 보았다. 굴속은 시원하고 조용했다. 촛불 한 자루면 굴 안을 충분히 밝힐 수 있었다. 극성스럽던 모기도 굴속까지 쫒아 들어오지는 못했다. 작은 밥상을 펴놓고 책을 읽던 그 시절이 생각나곤 한다.
고구마는 이듬해 보리가 나올 때까지 시골의 중요한 식량이었다. 하루 세끼를 고구마로 때우는 집도 있었다. 학교에 점심으로 고구마를 싸 온 친구들도 꽤 많았다.
요즈음 고구마를 많이 먹으라는 선전 문구를 본다. 성인병 예방에 좋다고 한다. 어린 시절 많이도 먹었던 고구마가 몸에 좋은 웰빙 식품이었다니, 그래서 고구마만 먹고도 모두들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나 보다.
지금이 시골에서는 고구마 심을 철이 아닐까 싶다. 요즘 아이들도 고구마를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따끈따끈한 군고구마를 먹으면서 어려웠던 시절 고픈 배를 채워 주던 고구마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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