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의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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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의 단상(斷想)

다가오는 불기 2556년 부처님 오신 날인 사월 초파일에 즈음하여 우리 역사에 있어서 불교와 우리 전남의 불교위상에 대한 이하의 소회는 민족. 문화 사적 관점에 입각한 것이기에 종교적인 이유로 인한 독자 여러분의 오해가 없기를 당부 드린다.
불교는 알다시피 1600여년 전, 고구려 소수림왕 2년, 서기 372년 전진의 순도가 최초로 전하였고, 백제에는 침류왕 원년, 서기 384년 동진의 마라난타가 영광 법성포를 통하여 전하였으며, 신라에는 고구려 승려 묵호자가 처음 전했지만 법흥왕 14년 서기 527년 이차돈의 순교로 공인 되었다.
우리나라의 불교 수용은 주로 왕실을 통하여 이루어졌고, 고대국가의 형성의 시기와 궤를 같이하는데, 이는 종래의 원시종교나 시조신을 대신하여 국가통치의 일원적인 사상적 지주로서의 역할을 불교가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왕실의 불교진흥은, 불교가 필연적으로 호국신앙의 성격을 띠게 되었고, 찬란한 불교문화유산을 남기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삼국의 교종계통의 불교는 귀족종교로서 발전하게 되었다.
이에 원효는 화쟁(和諍)사상으로 불교의 종합화를 추구하고, 민중불교인 정토신앙을 전도하여 불교대중화를 꾀하였다. 정토신앙은 어려운 불교경전을 모르더라도 염불 즉 나무아미타불만 염송하여도 서방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는 단순한 신앙이었다.
신라 말 선종(禪宗)이 도의선사가 도입하여 장흥 보림사에서 가지산파를 개창한 이래 선종 9산이 성립되었다. 선종 9산은 모두 지방에 위치하고 지방호족의 후원 속에 발전하여 중앙의 지배력이 미치지 못하였다. 또한 선승들은 불교사상과 함께 유교사상에 대한 지식도 깊어 지방으로의 유. 불(儒佛)사상을 전파하는 역할을 수행하여 사상계의 저변확대와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 영암 출신인 도선 국사는 선종 9산의 하나인 곡성 태안사의 동리산파의 제 2조로서 그의 풍수사상은 유불 사상과 결합하여 사상계의 변화를 주도하고 고려 건국의 토대로 작용하였음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이다.
고려시대도 불교국가로서 역시 불교가 미친 영향력은 지대하였다. 다만 불교계의 병폐가 나타나자, 선종에서는 순천 수선사(지금의 송광사)의 보조국사 지눌이 수선결사 즉 정혜결사를 주창하여 16명의 국사를 배출하였고, 천태종에서는 강진의 백련사의 원묘국사 요세가 백련결사의 운동을 주창하여 8명의 국사를 배출하고 불교계의 혁신을 주도하였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고, 불교가 백성과 괴리가 생길시 우리 전남의 불교는 항상 앞장서 위기를 극복하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또한 조선시대 불교가 갖은 탄압과 억압 속에서도 해남 대흥사에서는 풍담과 초우선사 등 13명의 대종사가 배출되어 불교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전남의 불교는 조계종 25교구 본사 중 4개의 교구본사가 있으며, 5개 총림(叢林, 선원 강원 율원을 모두 갖춘 절)중 송광사의 조계총림과 백양사의 고불총림의 2개가 위치하고 있고, 태고종의 총본사가 순천의 선암사에 있으나, 교세는 물론 신도 수와 신심에 있어서 미약한 현실이 참으로 아쉽다 하겠다.
이제 며칠 후면 부처님 오신 날이다.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좋다. 우리 문화유산의 보고인 가까운 산사에 가보자. 번거로움이 싫다면 한적한 날 잠시 일상을 떠나서 고졸한 산사의 풍치 속에 가벼운 산책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운이 좋다면 스님과 한 잔의 차를 마시며 산중한담(山中閑談)을 나누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으리라.
조주 스님(趙州,중국 당대의 유명한 선사)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이 절에 온 적이 있는가?” “온 적이 있습니다” “차 한 잔 마셔라” 또 다른 스님에게 물었다. “이 절
에 온 적이 있는가?” “처음입니다” “차 한 잔 마셔라” 이에 원주스님이 물었다. “어찌하여 와 본적 있는 사람도, 처음 온 사람에게도 차 한 잔 마시라 하십니까?” 이에 “원주야” 조주스님이 부르자, 원주스님이 대답하니 “차 한 잔 마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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