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임한 월출산 도갑사 월우스님의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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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이임한 월출산 도갑사 월우스님의 행적

대대적 복원불사에 문화 소통로 역할 ‘큰 울림’
8년3개월 재임 중 국비 등 100억원 이상 확보 천년고찰 본모습 복원
도선국사문화예술제, 불교대학 등 불모지서 문화예술 전도사 역할도
요즘 영암 불자들 뿐 아니라 군민들 사이에는 ‘큰 울림’이 있다. 8년 재임 중 해낸 대대적인 복원불사 때문만 아니다. 불교대학, 도선국사 문화예술제, 템플스테이 등등, 그가 중심이 되어 월출산 도갑사가 그동안 해낸 ‘문화 소통로’의 역할 때문이다. 특정 종교인 ‘불교’의 영역으로만 딱히 한정 짓기 어려울 정도인 그의 업적을 기리며 이임을 아쉬워하는 이들이 예상외로 많은 것이다.
월우 스님이 월출산 도갑사 주지로 취임한 때는 2004년3월. 그로부터 8년3개월만인 지난 6월11일 그는 홀연히 도갑사를 떠났다. 임기가 끝나서이지만 정확히 따지면 그것도 아니다. ‘떠나야할 때’이기 때문이란다. 아쉬워하는 이들에게는 “또 봅시다”라고 건넨 말이 답례의 전부. 그래서 법화경은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며,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는다(會者定離 去者必返 生者必滅).’했을 것이다.
산세가 빼어나고 풍광이 아름다워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렀던 국립공원 월출산. 뿜어져 나오는 웅장하고 거친 기(氣)를 아무렇지 않은 듯 감싸 안은 천년고찰 도갑사는 한때 건물규모가 966칸에 달했다. 영암사람 수미왕사(守眉王師)가 세종 3∼10년(1457-1464)간 대대적인 중창을 했고, 광해군(1603-1623) 때는 중수했다. 특히 수미왕사가 중창했을 때 도갑사는 전각과 요사채 등 건물규모가 966칸에 달했고, 소속암자는 12개였다. 재적한 승려 수는 무려 730명이고, 대적암(大寂庵)에서 공부하는 승려는 50명이나 됐다. 숙종8년(1682)에 만들어졌다는 길이 4.7m에 달하는 대형 석조가 그 증거다.
이런 월출산 도갑사를 옛 모습에 가깝게 복원해낸 이가 바로 월우다. 2009년4월 대웅보전 중층 복원은 그 계기. 이후 심검당, 산신각, 세진당, 선불당 등 여러 건물들이 속속 복원 또는 신축됐다. 2004년3월 주지로 취임한 이래 그가 복원불사를 위해 끌어들인 굵직한 국·도비만 70억여원에 달한다. 소소한 사업비까지 넣으면 100억원이 넘는다.
지금의 대웅보전은 어쩌면 월우와 닮았다. 도갑사는 임란과 한국전쟁 등을 겪으면서 대부분 소실됐다. 1977년에는 화재로 문화재였던 대웅보전마저 전소됐다. 참배객의 부주의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도갑사는 보잘것없는 사찰로 전락해 설 곳이 없어졌다. 1981년 복원됐지만 과거 천년고찰 도갑사의 본모습을 되찾기는 역부족이었다.
도갑사가 본격적으로 제 위상을 찾는 계기가 된 사건은 대웅보전 중층복원사업. 도갑사 주지로 취임한 월우는 3년여에 걸친 복원에도 불구하고 균열이 생긴 대웅보전을 다시 복원하기 위해 목포대 박물관에 발굴조사를 의뢰했다. 발굴조사결과를 토대로 무려 2년6개월 동안의 고증작업을 통해 대웅보전이 중층규모임을 확인했다. 1차 설계서 76평 규모였던 대웅보전이 110평 규모의 중층구조로 바뀌었다. 250여㎡에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로 지어진 대웅보전은 건축형태는 와부중층, 내부통층, 온칸 몰림 방식에 건축양식은 조선 초기 다포식 팔짝지붕에 막새기와를 얹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뤘다. 홍송으로 삼존불을 봉안했고, 내부에는 목조로 제작된 후불탱화를 모셔 복원의 의미를 더했다.
대웅보전 중층복원이 월우의 존재를 알렸듯 도갑사 복원불사의 시작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단층의 초라한 대웅전이 중층의 웅장한 모습으로 변모했으니 다른 건물들의 모양새도 달라져야 했기 때문이다. 2006년 심검당을 복원한 것을 비롯해 산신각을 건립했다. 심검당은 ‘마음을 여는 곳’이요, 산신각은 월출산의 영험한 정기를 다스린다는 산신을 모신 곳이다. 2007년 종각 이전에 이어 2008년에는 세진당 이전 후 선방을 개축했다. 넉넉한 마음으로 부처님이 되는 곳 ‘선불당’, 천분의 부처님이 각자의 표정을 짓고 있는 ‘천불전’, 들어가면 절로 미소가 머금어지는 ‘미소당’ 등의 전각도 모두 그가 심혈을 기울여 갖춰놓은 건물들이다. 현재 1차로 10억원의 국비가 투입되어 공사가 진행 중인 누각 및 장락 복원만 끝나면 도갑사는 옛 천년고찰의 위용을 완전히 되찾는다.
월우의 업적은 비단 복원불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본모습은 ‘문화예술’에 있다. 그 대표적인 행사인 도선국사 문화예술제는 신라의 4대 고승이자 풍수의 대가인 도선국사의 정신을 기리기는 행사일 뿐 아니라 이를 계기로 지역민들에게 문화와 예술의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2009년 개설한 ‘영암불교대학’은 불교에 관심 있는 주민을 대상으로 불교의 기초교리와 불교문화, 역사, 경전 등을 강의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할 때 정토세계가 이뤄지고 천년고을 영암도 크게 발전한다는 믿음이 깔려있다. 문화로부터 소외된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낙도어린이 여름 숲속학교, 일반인과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참된 나’를 찾는 템플스테이, 해마다 주기적으로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돕기에 나서는 일들도 월우로 인해 천년고찰로 본모습을 찾은 월출산 도갑사여서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또 봅시다”란 이별인사에도 불구하고 영암군민들이 그를 또다시 도갑사에서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를 만나는 것은 그로 인해 천년고찰의 위상을 되찾은 도갑사를 찾는 것으로 족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쉬움과 의구심은 남는다. 대웅전 앞뜰에서 ‘시인 김지하’ 같은 이가 영암군민들과 오순도순 이야기하는 기회가 다시 만들어질 수 있을지….
이춘성 기자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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