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오돈수(頓悟頓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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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오돈수(頓悟頓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 (Ⅱ)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의 단계에 있어 돈오점수에서는 지해-해오-증오의 단계를, 돈오돈수에서는 지해(해오)-증오로 상정할 수 있는데 보조국사의 고려시대나 성철 스님의 현대에 있어서 수행자들이 조그마한 진전을 보면 돈오 즉 구경각을 이루었다며 수행을 게을리 함에 대한 강한 질책과 함께 그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하여 수행에 보다 전념하라고 강조한 것이라 생각한다.
즉 보조 국사가 살던 시대의 수행자들이 지해나 해오의 깨침이 깨달음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르고 더 이상의 수행을 하지 않아 이른바 낮은 단계의 깨친 이후에 닦지 아니하자 보조 국사는 돈오(해오)한 다음 수행자들이 점수하지 않는 것을 경계하였고, 성철 스님이 살던 오늘 날에는 지해(해오를 포함한)는 절대로 깨침이 아님에도 깨침이라 생각하고 닦지도 않으면서 돈오했다고 말하고 돈오했기에 교만이 생겨 닦지 않음을 경계하며 그러한 조그마한 진전은 지해에 불과하다고 역설한 것이니, 두 사람은 똑같이 사람들이 닦지 않는 즉 수행에 소홀이 하는 병을 바로 잡으려 애썼다는 점이다. 다만 보조국사는 지해의 힘을 빌리려 했고 성철스님은 지해를 버림으로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점이다.
돈오에서는 점수에 대해 해오에 의지해서는 증오에 이를 수 없다고 말하고 점수에서는 먼저 해오가 없으면 아무도 구경각에 도달할 수 없다고 강조하는데, 성철 스님이 보조 국사가 해오를 증오로 혼동하여 돈오점수를 주장했는데 수행자들이 돈오점수의 영향을 받아 해오를 증오로 오해하여 용맹정진을 안한다며 보조국사의 돈오점수를 비판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전개된 돈점론은 근 800년 동안 절대적인 권위를 누려오던 보조선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돈수와 점수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것이 깨침(견성성불 見性成佛)과 닦음(수행 修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깨침이 문제되는 이유는 깨치지 못했기 때문이며, 닦음이 문제되는 이유는 닦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기서 보조국사의 돈오점수와 성철스님의 돈오돈수가 모두 깨달음에 이르는 주옥같은 지침이며 다만 그 당시의 시대상이 오롯이 투영되고 반영된 것이기에, 기복 보다는 참 나를 찾는 마음공부에도 관심을 가져보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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