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공후사(先公後私)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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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공후사(先公後私)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

이원형 본지 객원논설위원

조(趙)의 혜문왕(惠文王)이 진(秦)의 왕과 국경에서 회담을 가졌다. 조왕은 양국의 우호증진을 바랐으나, 진왕은 많은 사람 앞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왕을 모욕하려 하였다. 조왕의 수행원도 적지 않았으나 진왕의 위세에 눌려 그 누구도 조왕을 돕지 못했다. 단지 벼슬이 낮은 문관 인상여가 적극 나서서 진왕과 사리를 따지며 논쟁하여 조왕의 위신을 보전하고 조나라의 국제적 위치를 굳건히 하였다.
이에 조왕은 인상여가 남다른 지혜와 용기로 국가에 큰 공로를 세웠다며 그를 상경 즉 재상에 임명하였다. 모든 사람들은 이에 승복하였으나 오직 대장군 염파만은 예외였다. 염파는 조의 명장으로 많은 전공을 세워 백성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염파는 인상여의 직위가 자신보다 높은 것을 매우 못마땅하여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하였다. “나의 대장군의 직위는 생명을 걸고 피땀을 흘린 대가다. 인상여는 단지 주둥이만 놀려 내 머리 위에 올랐으니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 만약 인상여가 내게 걸리기만 하면 면전에서 창피를 주겠다.”
이런 말을 전해들은 인상여는 일부러 염파를 피했으며 심지어 군신의 정례조회에도 늘 핑계를 대고 불참하였다. 한번은 인상여가 수레를 타고 가다 앞에 염파가 있는 것을 멀리서 보고는 급히 수레를 골목 안으로 피하라고 하였다. 인상여의 수행원들은 그가 염파를 두려워하는 꼴을 보고는 불만과 함께 실망하여 말했다. “우리가 당신을 섬기는 이유는 당신의 재주와 덕망을 흠모하기 때문인데, 당신의 지위가 염파보다 높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비굴하게 굴어 부끄러워 이제 더 이상 당신을 섬기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인상여가 물었다. “그대들은 염파와 진왕을 비교하면 어떻다고 보는가?” “염장군의 위세가 비록 대단하지만 그래도 진왕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라고 수행원들이 대답하자, 이에 인상여가 말하길 “기세등등한 진나라 왕도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나는 굴복시켰다. 내가 비록 쓸모없는 사람이지만 어찌 염파 한사람만 두려워하겠는가?” “그대들은 알아야 한다. 진나라가 감히 우리 조나라를 침략하지 못한 이유는, 문신으로는 내가 있고, 무장으로는 염파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두 사람이 충돌하면 두 호랑이가 싸우는 것과 같아 누군가는 필히 다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진나라에게 침입의 기회를 주지 않겠는가? 국가의 득실은 개인의 이해보다 중요한 것(先公後私)이니 내가 참아야 하는 것이다.”
염파가 이 말을 전해 듣고는 부끄러워 웃옷을 벗은 채 채찍을 등에 지고 많은 친구들과 함께 인상여를 찾아가 사죄를 하며 자기를 벌해 달라고 청했다. 이에 인상여는 염파를 방안으로 맞이하였고,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자 곧 의기가 투합했고, 이로부터 두 사람은 아주 친한 친구가 되어 조나라의 부국강병을 이루었다.
선공후사는 이 고사에서 생겨났는데, 개인주의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가 만연한 오늘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한번쯤 되새겨 보자는 의미에서 소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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