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뒤뜰 나무들에게 물주는 일을 잊었다. 해가 설핏하면 물을 주어야 겠다고 생각하는데 외출했던 아내가 들어왔다. 물을 주었냐고 묻기에 깜박 잊었다고 대답했더니 잔소리를 시작한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이든 남편들은 안다. 나도 담임선생님 앞에 선 초등학교 3학년 학생처럼 다소곳이 말씀을 들었다.
감나무, 대추나무, 레몬나무, 석류나무에 차례로 물을 주었다. 무엇보다 매화나무, 아내에게 구박을 받고 있는 저 가련한 녀석에게 더 많은 물을 주었다. 시원한 물을 잎에도 뿌려주었다.
저 녀석이 우리 집 뒤뜰로 온 날이 20년도 넘었다. 거실 유리창을 열면 바로 보이는 가장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해마다 봄이면 누구보다 일찍 꽃망울을 터뜨리며 봄을 알려주는 저 녀석. 그러던 어느 해, 내가 저 녀석을 베어버리자고 했다. 그랬더니 아내가 펄쩍 뛰었다. 그 이야기로 시 한편을 썼다. ‘누가 시인일까’라는 제목이다.
“이사 온 다음 해 뒤뜰에 심었던 / 복숭아나무가 열매를 잘 맺지 않아 / 베어버리자고 했더니 / 아내가 펄쩍 뛰었다 // 저것도 목숨인디 / 잘 크는 나무를 뭣땜새 뜬금없이 / 잘라버리자 하느냐고 / 집안에 복숭아나무가 있으면 / 여인네가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다는 / 속설을 믿고 혹시 그러냐고 / 기를 쓰고 말렸다 // 먼 산에 하옇게 눈이 쌓였는데 올 봄도 / 꽃망울 터트려 환한 봄소식 전해주는 / 나무를 바라보며 / 떠오르는 생각하나 // 하마터면 생목숨 잘릴 뻔 했던 / 녀석의 눈에는 / 누가 시인일까 / 나일까 / 내 마누라일까”
그런데 이번에는 아내가 녀석을 베워버리자고 한다. 나무가 오래되어 벌레가 떨어지고, 양 옆에 심은 예쁜 푸루베리아 꽃나무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였다. 그렇지만 나는 다르다. 젊은 여인이 싱싱하고 매력은 있지만 나에게는 나이든 마누라가 더 이뻐 보인다. 참말이다. 믿기지 않으면 용현이 형님이나 동찬이 아우에게 물어보면 안다. 같은 이치다.
그러던 중, 엊그제 매화나무 가지 하나가 잘려나갔다. 나 없는 사이 아내가 베어버린 것이다. 다시는 손대지 말도록 쐐기를 박아 놓았지만, 잘린 가지는 엎지러진 물이 되었다.
요즘 아내의 잔소리가 좀 늘었다. 잔소리는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다. 병든 새는 노래할 수 없다. 아내의 잔소리를 듣는 동안 나는 최소한 앞치마를 두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 홀연히 아내가 잔소리를 그친다면, 나는 얼마나 막막할 것인가. 어느 날 뜬금없이 잔소리를 들어줄 게으름뱅이 남편이 사라진다면 아내는 또 얼마나 쓸쓸할 것인가.
가련하고 불쌍한 매화나무. 이런저런 사단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늘 저렇게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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