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는 자세 정말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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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책임지는 자세 정말 어려운가

새로 임명된 장관 등의 청문회를 앞두고 논란이 거세다. 언론과 야당 등이 그동안의 경력을 더듬어 들추어낸 ‘부끄러운 과거사’가 그 핵심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어디 있으랴만 어떤 이는 털어낸 것이 ‘먼지’수준을 넘어서 국민들이 경악할 정도다. 임명된 자리에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데도 당당하게 버티고 있어 거꾸로 국민들이 사표를 내야할 지경이다. 이 모두가 과거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가 낳은 일들이다.
우리 고장 영암지역의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일을 추진하다 보면 잘못은 항상 발생할 수가 있다. 지방행정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15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행정을 추진하다 잘못이 발생하면 이를 책임지거나 적극 나서 해결하려는 사람이 없는 현실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영암군정이 바로 그 전형이다. 왠지 나사가 풀린 느낌까지 들 정도다.
기억하기 싫지만 더듬어 보자. 2008년 5급 공무원 김모씨는 직원 채용을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산림조합장이 영암군에서 장뇌삼 관련 보조금을 지원받아 납품업자들과 짜고 수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뒤 이 가운데 2억6천만원을 조합장 활동비와 유흥비 등으로 사용했다 구속됐다. 보조금 유용이 가능했던 것은 공무원들의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영암군청 공무원 박모씨도 산림조합과 하도급업체로부터 4천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받은 것으로 드러나 구속됐기 때문이다. 올 들어 지난 5월에는 전남경찰청 경제범죄특별수사팀이 관급공사 업자로부터 공사수주를 대가로 뒷돈을 받아 챙긴 혐의로 영암군청 5급 공무원을 구속했다. 또 다른 공무원 4명은 불구속 입건됐다.
민선 4기 영암군정은 이처럼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공직비리로 얼룩졌다. 기찬랜드 불법조성 등으로 공직자들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영암군이 각종 비리의 온상인상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렸다. 영암군민의 자존심이 심각하게 상처받았음은 물론 묵묵히 일하고 있는 대다수 공직자들의 사기까지 크게 저하시켰다. 하지만 누구하나 군민에게 진솔하게 사과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이런 영암군의 현실은 분노를 넘어 서글프기까지 하다.
지역사회에서는 형사처벌을 받은 이들이 자신들 혼자 저지른 범행이 아닐 것이라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직원 채용 비리만 하더라도 신규 채용 등 인사권은 5급 공무원인 김모씨에 있지 않다는 사실쯤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 산림조합의 특성상 행정기관인 영암군과 깊은 유대관계가 없으면 조합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비자금을 조성해 조합의 활동비와 유흥비로 썼다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인 것이다. 공무원 박모씨도 산림조합과 하도급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협의로 구속됐지만 이 또한 단순한 뇌물수수사건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극소수다.
상황이 이 정도였으면 영암군정을 책임진 김일태 군수는 자신은 깨끗하다며 모르쇠로 일관할 일이 아니라 적어도 군민들에게 사과 한마디는 했어야 옳다. 재발방지대책도 내놓았어야 했다.
민의(民意)의 수준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던 조선시대 성종임금은 “즉위 이래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들을 염려하는데 내 마음을 다했지만 홍수와 한발이 없는 해가 없었다”며 “하늘의 견책을 깊이 생각하면 실로 나의 부덕의 탓이다”고 자책했다. 중종임금은 실정(失政)을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국왕의 자성(自省)이 담겨있는 ‘책기교서(責己敎書)’까지 반포했다. “내 마음이 가려져서 온갖 하는 일이 어그러졌는가? 상벌에 법도가 없어서 권장과 징계가 되지않는가?스스로 책망하니 몸 둘 바가 없다.초야의 사람일지라도 내 잘못과 민간의 병폐를 아뢰게 하라”고.
하지만 군정의 모든 권한을 손아귀에 쥔 김 군수는 군민 대다수가 거의 진상을 파악하고 있는 지금도 자신을 책망하지 않고 ‘네 탓’ 공방만 하고 있다. 가는 곳마다 들려오는 말실수들이 그 예다. 하지만 이는 무언가 대단히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신호다.
산림조합 관련 비리로 처벌을 받은 A씨가 민선 5기 취임식날 사석에서 ‘지위와 명예까지 버리면서 내가 누구 때문에 그 고생을 했는데 이러면 안 되지’라고 불만을 토로한 속뜻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세상에 비밀은 없는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알게 되어 있다.
문태환 기자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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