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완성, 먹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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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여행의 완성, 먹거리

영암읍도시재생주민협의체 조정현 위원장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평소에 보지 못하는 뭔가를 찾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정한 곳에서 보았던 시각적인 특별한 장면들은 오랫동안 뇌리에 남는다. 경주 감은사 탑, 낙산 밤바다의 비단결 같은 파도, 지리산 천왕봉 일출, 속리산 자락 우렁우렁 피어오르던 잎사귀들,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펼쳐진 전망, 봄이 되면 은빛의 강물이 더 반짝이는 섬진강 등등이 있고, 우리 고장 영암에도 빼놓을 수 없는 장소가 몇 군데 있다. 지금은 등산로 ‘하늘 아래 첫 부처길’이 정비되어 더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국보 제144호 ‘마애여래좌상’, 이 불상을 처음 만나게 되면 그 웅장함에 압도되어 한참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합장하고 서 있을 것이다. 도갑사 위 암자 ‘상견성암’ 툇마루에 앉아 저물어가는 석양빛을 바라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면, 극락의 세상은 이러하리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각적인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여행길의 가장 큰 관심은 그 지역의 먹거리일 것이다. 주말이면 이리저리 찾아다닌 옛 시절을 돌아보면, 광주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면 갈 수 있는 모든 곳이 여행지였고, 빈약한 주머니 사정은 그 지역의 시장통에 있는 허름한 곳들로 이끌었다. 남원 시장 안에 자리했던 팥칼국수집, 순창 터미널 근방에 있었던 순댓국집, 지리산 들머리의 구례읍 분식집, 그리고 화엄사를 통해 지리산을 오를 때면 찾아가던 콩나물국밥집, 막걸리가 달았던 쌍계사 앞 산나물 비빔밥집 등등. 지금도 그 맛이 생생하고, 그 장소들의 이미지는 오래전 녹동에서 광주로 돌아오던 버스 안에서 보았던 보름달의 잔상처럼 아직도 선하다. 세월이 흘러 서울살이를 하면서도 그 동네, 그 집들을 그리워하였고, 지나는 길에 간판이라도 정겨운 고향 동네가 보이면 들어가 보고는 하였다.

과거의 영암은 지역을 상징하는 대표 먹거리가 있었던 곳이었다. 영산강과 문수포에 바닷물이 들어오던 시절에는 전국 최고의 뻘밭이 있어 맛조개, 짱뚱어, 민물장어, 그리고 낙지가 너무나 흔했다. 맛조개로 만들어내던 먹거리는 영암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음식이었고, 문수포의 낙지는 독천장에 나와서 ‘갈낙탕’이라는 영암만의 음식 브랜드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영산강도 막히고, 문수포도 갇혀버린 지금은 영암에서 채취되는 해산물은 거의 사라지고, 어린 시절 흔하디흔했던 맛조개, 낙지, 짱뚱어는 이제는 인근 지역에서 유통과정을 거쳐야만 들여올 수 있다. 비록 외지에서 들여온 재료이지만 아직은 옛 솜씨를 간직한 식당들이 짱뚱어와 낙지를 이용하여 만들어내는 음식들이 그 이름을 이어가고 있다.

도갑사 앞에 있었던 수많은 닭백숙집을 기억하는가? 앞가슴살로 육회를 내어주고, 다른 곳에서는 버리는 닭발마저 날카로운 칼질로 먹거리로 만드는 등, 닭 한 마리로 끝없는 성찬을 내주었던 그 닭백숙집이다. 영암을 상징하는 음식이었고, 월출산을 찾아오는 많은 분들이 사랑하던 음식이었는데, 이제는 이리저리 흩어져 명맥을 유지하는 몇 군데를 제외하고 어느 날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어쩔 수 없는 여러 가지 사정들이 있었겠지만, 당시 행정에서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사후 대책을 세웠더라면, 월출산을 대표하던, 그리고 영암을 대표하던 그 음식은 여전히 주말이면 월출산 등반객들과 인근 지역에서 찾아오던 수많은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을 것이다.

며칠 전 반갑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민선 8기에 들어서며 행정에서 먹거리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작년 연말부터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유명 세프를 초빙하거나, 모 대학의 외식조리학과와 협업하여 영암 대표 먹거리 개발을 위한 노력을 해왔다.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일을 추진하기 위해 먹거리에 대한 예산을 세운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 예산이 전액 삭감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물론 과거의 관행에서 비롯된 물을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이라 보며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겠지만, 민선 8기에 들어서며 먹거리에 대한 접근법과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열정이 달라지고 있음을 좀 더 이해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불행 중 다행으로 영암읍 도시재생사업에서 임시로 변통할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임시 처방만 가지고는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으니 하반기 추경안을 기대한다.

관광객, 그리고 월출산을 찾는 탐방객을 영암으로 유인할 방법은 다른 지역에 없는 볼거리와 특별한 먹거리이다. 소재지가 있는 영암읍은 ‘영암성’을 잘 활용하여 그 가치를 알리고 성터와 성벽이 남아있는 곳을 잘 보존하고 개수하여 시각적인 특별함을 주고, 을묘왜변 당시의 ‘영암성대첩’이란 역사적 사실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로 만들어낸다면, 영암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영암의 대표적인 생산품인 고구마, 무화과, 대봉감, 메론, 매력한우, 오리, 닭 등을 활용한 먹거리를 과거의 전통을 이어 새롭게 개발하여 영암을 대표하는 먹거리로 내보일 수 있다면 ‘여행지로서의 영암’은 완성될 것이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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